잠시 숨을 고르던 유럽 대륙이 다시금 최악의 폭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기 흐름이 정체되며 뜨거운 공기를 지상에 가두는 '열돔(Heat Dome)' 현상이 재형성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남유럽 전역에 최고 수준의 폭염 경보가 발령되었다.

건조한 기후가 겹치며 산불 발생 위험도 극단적으로 치솟고 있다.

다시 찾아온 열돔 현상과 폭염의 재점화

지난달 말 북유럽의 찬 공기 유입으로 잠시 기온이 평년보다 낮아지는 등 소강 국면을 보였으나, 대기 흐름이 바뀌면서 20일 만에 다시 강한 열돔이 형성되었다.

이번 폭염은 올해 들어 벌써 다섯 번째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부 지역은 낮 기온이 40도를 웃돌고, 영국 남동부와 프랑스도 35~40도에 육박하는 등 대륙 전역이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산불 비상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은 영국 남부부터 알프스, 발칸반도에 이르는 지역의 화재위험지수(FWI)를 최고 단계인 ‘매우 극단적(Very Extreme)’으로 격상했다.

올해 EU 내 산불 소진 면적은 이미 49만 8,823헥타르에 달해, 지난 2022년 이후 가장 넓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와 33만 명의 대피 인원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모두 비상

이탈리아에서는 감시 대상 27개 도시 전체에 최고 단계인 '적색경보'가 발령되었으며, 일부 지역은 기온이 40도 이상 치솟을 것으로 예보되었다.

영국 기상청은 13일 이스트앵글리아 등 일부 지역이 36도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영국은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 35도를 넘어서는 이례적인 폭염 기록을 쓰게 된다.

프랑스는 11일부터 시작된 폭염으로 산불 위험이 급증함에 따라 전국적인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장기화되는 가뭄, 기후 변화로 인한 고착 현상

이번 폭염과 가뭄의 직격탄을 맞은 서유럽, 남유럽, 그리고 알프스에서 발칸반도로 이어지는 지역은 장기간 이어진 가뭄으로 토양이 극도로 바짝 메마른 상태여서,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이 단순한 일시적 기상 이변을 넘어, 기후 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당국은 구조대와 소방력을 집중 배치하고 있으나, 계속되는 폭염과 강풍 예보로 인해 완벽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향후 기온이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주 후반까지는 산불 방재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개기 일식으로 전력도 비상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오는 12일 스페인 등지에서 개기일식이 관측될 예정이다.

유럽 전력망 운영 당국은 12일 예정된 개기일식으로 인해 전력 수급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비상 대응에 나섰다.

유럽송전망운영자협회(ENTSO-E)에 따르면, 일식이 정점에 이르는 오후 7시 15분부터 9시 30분(CEST 기준) 사이 유럽 전역에서 최대 9.7GW의 태양광 발전 전력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대형 원자력 발전소 약 9~10기 분량의 전력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것과 맞먹는 규모다.

특히 개기일식이 관측되는 스페인은 최대 5GW(통상 8월 수요일 최대 전력 수요의 약 13%)의 전력 손실이 예상되며, 독일 등 태양광 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폭염으로 강물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상승하면서, 원전과 석탄 화력 발전소의 필수 냉각수를 확보하지 못해 이미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멈춘 곳도 많다.

주요 전력 수출국인 노르웨이조차 가뭄으로 인해 수력 발전 저수지 수위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전력이 부족한 국가들이 주변국에서 전기를 빌려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폭염으로 인한 에어컨 사용 등 전력 수요는 최고조에 달해 있는데, 공급원(원전·화력·수력·태양광)이 동시다발적으로 타격을 입으며 전력망의 '완충 능력'이 사실상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천문학적으로는 보기 드문 장관이지만, 현재 유럽 입장에서는 폭염과 가뭄이라는 악재에 더해진 '에너지 안보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기상청(AEMET)은 개기일식 당일에도 산불위험지수가 극단적으로 높을 것으로 보고 야외 활동 자제 등 시민들의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