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아니면 안 된다’던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의 진로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엔지니어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영재학교·과학고(영과고) 입시 현장의 분위기도 뒤바뀌고 있다.
“의대보다 낫다”… 대치동 바뀐 대화 주제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학생들의 주요 대화 주제가 ‘의사 연봉’에서 ‘엔비디아·딥시크(중국) 엔지니어의 성과급’으로 옮겨갔다.
이장호 CMS 대치입시센터 부소장은 “3~4년 전만 해도 의대 연봉이 최고 화두였지만, 지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물론 글로벌 AI 기업의 엔지니어 몸값이 뛰면서 선망의 직종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기본급은 의사가 높지만, 성과급을 합치면 공학 엔지니어의 수입이 의사의 2~3배에 달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과고 경쟁률 6.21대 1… 입시 열기 고조
반도체 산업 호황은 영재학교 입시 경쟁률로도 증명된다. 2027학년도 전국 7개 영재학교 평균 경쟁률은 6.21대 1로, 지난해(5.72대 1)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영재학교 대비반에 등록하는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 내년에는 부천과학고와 분당중앙과학고 등 신설 학교까지 더해지며 이공계 인재 양성을 향한 교육계의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왜 ‘의대 프리미엄’이 떨어졌나?
전문가들은 의대 쏠림이 완화된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지역의사제 및 지역인재 전형 확대: 내년부터 490명을 뽑는 지역의사제와 지역인재 전형(1,232명)이 합쳐져 전체 의대 정원의 절반인 1,722명이 지역 학생들에게 배정된다. 이에 따라 수도권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프리미엄’이 실질적으로 하락했다.
이공계 대우 급상승: AI와 반도체라는 국가 전략 산업의 중심에 공학 엔지니어가 서게 되면서, 공대 진학의 비전이 의대 못지않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대학 진학 제약: 영과고 출신 학생들은 의대 진학 시 제약(학비 반환 등)이 따르는데, 과거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의대를 택했으나 이제는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공학 분야에서 충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적성과 미래 가치로 대학 선택
이장호 부소장은 “이제 영과고 상위권 학생들은 의·공대 관계없이 자신의 적성과 미래 가치를 따져 대학을 선택하는 추세”라며 “국가 차원의 이공계 육성 정책과 산업 현장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공대 선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