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의 격화되는 무력 충돌 여파가 중동의 또 다른 핵심 해상 통로인 홍해로 번지고 있다.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전격적인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아시아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후티 반군의 '사우디 해상 봉쇄' 선언
후티 반군 대변인 야히야 사리는 20일 TV 성명을 통해 "범죄 국가인 사우디 적들을 상대로 한 해상 봉쇄(Maritime Embargo)가 즉각 효력을 발휘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최근 사우디 주도 동맹군이 후티 통제하에 있는 예멘 수도 사나의 공항을 폭격하고 항만·공항 봉쇄를 지속한 데 대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 조치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힌 상태에서, 친이란 세력인 후티가 사우디의 우회 수출로까지 봉쇄하고 나선 것은 미국과 이란의 충돌 구도가 예멘 및 홍해 전선으로 본격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원유 7% 이동하는 통로
이란전쟁 발발 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어려워지자 사우디는 동부 유전의 원유를 육상 송유관을 통해 서부의 얀부항으로 보낸 뒤, 홍해 남쪽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수출하는 물량을 대폭 늘렸다.
해운 데이터업체 케이플러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 우회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류 물동량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7%에 달한다. 이곳을 통한 글로벌 원유 공급이 즉각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얀부항을 통한 사우디의 원유 수출은 그동안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생명줄' 역할을 해왔으나, 후티가 이 항로를 봉쇄하겠다고 나서면서 사우디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이 치명적인 타격 가시권에 들었다.
후티의 선언 직후 홍해 통항 선박의 전쟁위험 프리미엄도 기존 약 0.3%에서 약 0.75%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수입국 직격탄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노암 레이든 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얀부항을 출발한 석유 제품의 주요 수입국이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후티의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이들 국가의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수에즈 운하 우회 등으로 인해 운송 및 보험 비용이 폭등할 우려가 크다.
이러한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20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의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9.22달러로 전장 대비 1.27% 상승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후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봉쇄를 실행할지, 과거처럼 실질적인 상선 공격 재개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외신과 해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란 측이 막후에서 중재국을 통해 미국과의 외교적 접촉 및 10일간의 휴전 제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면서 유가의 추가 폭등은 일단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유엔(UN) 등 국제사회도 후티 반군의 해상 봉쇄 위협이 중동 전역을 통제 불능의 '더 넓은 지역 전쟁'으로 확드시킬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군 사상자 발생에 대응해 대(對)이란 공습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후티 반군의 홍해 해상 봉쇄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중동 정세는 '에너지 안보 대란'이라는 통제 불능의 분수령을 향해 치닫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