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앞두고 무려 21년 동안 도피 행각을 벌여온 전직 의사가 가명을 사용하며 로스앤젤레스(LA)의 바이오 기업 최고임원으로 버젓이 근무해 오다 연방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전직 마취과 의사인 로널드 L. 피셔(Ronald L. Fischer·70)는 지난 2003년 로드아일랜드주 포츠머스에 정박한 자신의 요트 위에서 같은 주의 웨스터리 출신 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 2005년 로드아일랜드주를 떠나 잠적했다.

당시 그는 불출석 상태에서 법원으로부터 1급 성폭행 유죄를 선고 받은 상태였다.

연방보안관국(U.S. Marshals Service)에 따르면, 최종 변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사라진 피셔는 20년이 넘는 도피 기간 동안 10개가 넘는 가명을 사용하는 등 치밀한 신분 세탁으로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 다녔다.

그는 마취과 의사, 바이오 제약회사 고위 임원, 요트의 달인,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형을 선고 받지 않은 강간범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살았다.

LA 바이오 기업 '최고의료책임자(CMO)'로의 화려한 변신

피셔는 도피 중 '리처드 그레이든'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웨스트 LA에 위치한 바이오 제약회사 '이믹스 바이오파마(Emixis Biopharma)'에 잠입했다.

그는 전문직 경력을 살려 해당 기업의 최고의료책임자(CMO)라는 고위 임원직까지 올라 버젓이 사회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뉴저지 해상 요트서 검거

연방당국은 최근 입수한 결정적 단서를 바탕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한 끝에, 뉴저지주 앞바다에서 56피트 규모의 요트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호에 타고 있던 피셔를 급습해 체포했다.

가명으로 등록된 보트를 운항하고 있던 그는 체포 당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기소했던 검사는 "남미로 도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뉴욕이나 뉴저지 같은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뻔뻔스럽게 그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좀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담당했던 사건이었고, 한 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며 "수년 전에 이루려 애썼던 정의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폭행 피해 여성은 "21년이 지나 그 남자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며 "트라우마가 20년 동안 따라다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에 교직 생활을 마감했고, 가족 관계도 파탄 났다. 이제야 평안을 느낀다.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정말 긴 여정이었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의 아들은 어머니가 몇 년 동안 빤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고 말해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며, 이제 사법이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사법적 단죄를 요청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이믹스 바이오파마 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리처드 그레이든'이 지난 17일 자로 퇴사했으며, 퇴사 사유는 회사 업무와는 무관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피셔는 법정 불출석, 1급 성폭행, 그리고 기소 회피를 위한 도주 혐의 등으로 신병이 구금되었으며, 곧바로 범죄가 발생하고 재판이 진행되었던 로드아일랜드주로 이송되어 처벌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