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금값이 최근 한 달 사이 10% 넘게 떨어진 가운데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실물 금 매입을 다시 추진한다. 금값이 조정을 받는 상황에서 한은은 오히려 외환보유액의 투자처를 다변화하고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금 보유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30일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서 순도 99.99% 금 가격은 전날 종가 기준 1g당 18만1,460원이었다. 지난 8월 28일 20만3,010원과 비교하면 약 한 달 사이 10% 넘게 떨어진 수준이다. 지난해 9월 26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매경이코노미에 따르면 이날 금 가격은 1g당 18만2,940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0.82% 올랐지만, 8월 25일 종가인 20만8,300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12% 넘게 낮다. 국제 금값 역시 8월 고점 대비 약 10%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금값이 약세로 돌아선 가장 큰 배경 가운데 하나는 미국 금리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물가 상승 압력을 다시 경계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미국 국채금리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은 이자나 배당을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가면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 상승도 금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9월 29일 장중 5.621%까지 올라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10년물 금리 역시 장중 5.293%까지 오르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금값이 조정을 받는 시점에 한국은행은 금을 다시 사들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정태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12월 14일 금 거래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국내에서 생산된 실물 금의 매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예상 매입 규모는 약 1톤 안팎으로, 현재 국제 금값을 기준으로 약 2,000억원 규모에 해당한다.

다만 1톤 매입이 이미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뉴스1에 따르면 이창헌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운용기획팀장은 12월 14일 관련 시스템 구축이 완료될 예정이라면서 그 시점에 거래가 가능하면 매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금 생산업체와 협의해 실제 거래 가능한 물량을 파악하는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이번 매입이 실제로 이뤄지면 한국은행이 실물 금을 사들이는 것은 2013년 이후 13년 만이다.

한국은행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금 90톤을 매입했지만 이후 추가적인 실물 금 매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금은 이자나 배당 같은 현금흐름이 없고 보관 비용도 발생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운용 측면에서 다른 금융자산보다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제정세가 크게 달라졌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각국 중앙은행 역시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의 비중을 늘리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 금을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외환보유액의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올해 2분기 이미 약 2억5천만 달러 규모의 금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며 금에 대한 간접투자를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에서 생산된 실물 금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까지 추진하면서 금 투자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국내 생산 금을 매입할 경우 외화를 사용하지 않고 원화로 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은은 국내 금 생산업체가 해외로 수출할 예정인 물량 등을 협의해 매입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약 104.4톤으로 알려졌다. 금의 외환보유액 내 비중은 시가 기준 약 3.4% 수준이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은행의 금 보유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실물 금 매입은 단기적인 금값 움직임에 베팅하는 성격이라기보다 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의 구성과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금값이 한 달 사이 크게 떨어졌지만 향후 방향은 여전히 미국 금리와 국채금리, 달러 가치, 국제유가와 지정학적 상황 등에 좌우될 전망이다.

한국은행 역시 당장의 금값보다 중장기적인 외환보유액 운용과 안전자산 확보를 고려해 금 매입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