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법조계,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던 세기의 희대의 존속살해범 ‘메넨데즈 형제(Lyle & Erik Menendez)’가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훨씬 앞서 다시 한번 자유를 두드릴 수 있게 됐다.
캘리포니아주 가석방위원회에 따르면, 라일 메넨데즈와 에릭 메넨데즈 형제에 대한 조기 가석방 적합성 심사가 승인됨에 따라, 2028년 8월로 예정되었던 다음 심사일이 2027년 3월로 1년 5개월 가량 앞당겨졌다.
형제는 1989년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부모 호세(Jose)와 키티(Kitty) 메넨데즈를 총기로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십 년째 복역 중이다.
당초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2025년 5월 법원이 형량을 낮추면서 가석방의 길이 열렸다.
새 형량은 ‘최소 50년 복역 후 가석방 가능 종신형’이며, 범행 당시 26세 미만이던 두 사람에게 캘리포니아주의 청년 범죄자 가석방 제도가 적용되면서 심사 자격이 주어졌다.
다만 형제는 이미 지난해(2025년) 8월 가석방 심사를 받았으나 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기각된 바 있어, 다가오는 2027년 3월 심사에서 과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가족 측은 형제가 수감 생활 동안 교도소 내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타 수감자들을 돕는 등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이번 조기 심사 결정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이들은 왜 부모를 살해했는가?
메넨데즈 형제 사건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인 미스터리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는 ‘잔인한 존속살해’라는 결과 뒤에 숨겨진 끔찍한 학대 피해 주장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형제는 아버지인 호세 메넨데즈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수년간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상습적인 성적 학대(Child Sexual Abuse)를 당해왔다고 폭로했다.
어머니 키티 메넨데즈 역시 이러한 학대를 방관하거나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쿠바 출신의 이민자 출신인 아버지 호세 메넨데즈는 치열한 노력 끝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정점에 오른 자수성가 거물급 인사였다.
RCA 레코드(RCA Records)의 임원을 지냈고, 이후 세계적인 음반·엔터테인먼트사인 라이브 엔터테인먼트(Live Entertainment)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당시 유명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대형 계약을 주도하는 등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과 막대한 재력을 행사하던 할리우드와 음악계의 실세 중 실세였다.
'성공한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었던 부유하고 저명한 명문가 가정이, 자식들의 손에 의해 베벌리힐스의 호화 저택에서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점 때문에 당시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형제 측은 부모가 자신들의 추악한 비밀(학대 사실)을 영원히 묻어버리려 했고, 아버지가 자신들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와 통제감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방어적으로 저지른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계획적인 냉혈한 살인마가 아니라 오랜 학대에 시달리다 폭발한 피해자들이라는 논리였다.
반면 검찰은 형제가 부모의 막대한 거액의 재산과 저택을 상속받기 위해 철저하게 사전 계획을 세워 부모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맞섰다.
실제 첫 번째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배심원 평결 불일치) 무효가 선언될 정도로 대중과 사법부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재판부도 아버지의 잔인한 성격이나 가정 내 폭력의 정황 일부는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부모를 총으로 무참히 살해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학대 주장을 판결에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재판에서 학대 증거 중 상당 부분이 제한되면서 형제는 유죄(1급 살인)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들의 과거 학대 피해를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대중문화(다큐멘터리 등)를 통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형제가 오랜 기간 처벌받을 만큼 복역했다"는 동정론과 재심·가석방 지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른 뒤 드러난 새로운 증거와 증언들
형제들이 수십 년간 복역하는 동안,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정황들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거 유명 보이밴드 '메뉴도(Menudo)'의 전 멤버인 로이 로셀로(Roy Rosselló)가 "어린 시절 음악계 거물이었던 호세 메넨데즈(형제의 아버지)로부터 성추행과 학대를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하면서 호세 메넨데즈가 실제로 상습적인 아동 성학대 가해자였다는 정황이 강력한 신빙성을 얻고 있다.
에릭 메넨데즈가 범행 수년 전에 친척 형에게 아버지로부터 당한 학대 피해를 털어놓으며 쓴 편지가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새로운 증거들과 시대적 변화(아동 성학대 및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로 인해, 오늘날 미 법조계와 대중 사이에서는 "형제가 실제로 극심한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음이 틀림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