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대화에 나서면서 국제유가가 2주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 사이에 외교적 접촉이 재개되고 걸프 지역의 원유 공급도 일부 회복되면서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 불안이 다소 완화된 영향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3일 국제유가는 최근 2주 이상 만에 가장 낮은 수준 부근에서 움직였다. 브렌트유 선물은 한때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갔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브렌트유는 전날 배럴당 97.36달러까지 떨어지며 지난 9월 8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의 가장 큰 배경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이란의 외교적 접촉이다. 양국은 수개월간 군사적 충돌과 대립을 이어왔지만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중재자를 통한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미국 측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는 이란 측과의 협상에 참여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의 접촉에 대해 합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미국과 이란 어느 쪽도 이번 접촉에서 구체적인 양보나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원유시장에서는 실제 합의가 성사됐는지보다도 전쟁이 확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 먼저 반응하고 있다. 군사적 충돌이 줄어들면 중동에서 막혀 있던 원유 공급이 다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공급 회복 움직임도 가격을 끌어내린 요인이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가 지난 11일 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중단했던 동서 송유관의 운영을 재개했다고 보도했다. 이 송유관은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된 원유를 홍해 쪽으로 우회 수송할 수 있는 핵심 시설이다.

사우디는 이 송유관을 이용해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원유를 홍해 연안으로 수송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원유를 운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동 공급망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호르무즈 해협 역시 여전히 국제유가의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이란 측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미국이 군사적 압박과 이란 항구 봉쇄를 완화할 경우 7일 이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협을 둘러싼 실제 운항 상황은 아직 정상과 거리가 있다. 로이터가 선박 추적자료를 분석한 결과 22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주요 화물선은 2척에 그쳤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평균 약 125척의 대형 상선이 이 해협을 오갔던 것으로 집계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매우 중요한 통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공급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에 해협의 장기적인 운항 차질은 국제 에너지 가격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 원유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달리 디젤 등 정유제품 시장에서는 공급 부족 우려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디젤 수출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유럽 저유황 경유의 가격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디젤 수출을 제한할 경우 유럽과 다른 지역의 연료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원유 자체의 공급 상황과 휘발유·디젤 등 정유제품의 공급 상황을 별도로 지켜보고 있다.

결국 국제유가의 향방은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실제 합의로 이어질지,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이 정상화될지,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의 공급이 얼마나 빠르게 회복될지에 달려 있다.

미·이란 간 협상이 진전되고 중동의 원유 수송이 정상화된다면 국제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거나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다시 확대될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제유가 시장은 군사적 충돌 자체뿐 아니라 외교 협상의 진전 여부와 실제 원유 공급량 변화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이다. 향후 며칠간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과가 국제 에너지 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