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유럽의 항공유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의 주요 항공유 재고가 수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한국산 항공유가 유럽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한국 정유업계가 새로운 핵심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 지역의 정유시설과 수송망이 전쟁의 영향을 받으면서 유럽이 필요한 항공유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의 항공유 시장은 중동과 러시아 등 주변 지역의 공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여서 전쟁 장기화가 공급망 불안을 키우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이 올해 4분기에 하루 약 51만 배럴 규모의 항공유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상대적으로 공급 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에서 항공유 재고가 특히 빠르게 줄어든 곳은 네덜란드·벨기에를 중심으로 한 암스테르담-로테르담-앤트워프(ARA) 지역이다. 이 지역은 유럽 석유제품 거래와 저장의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유럽은 아시아 등 먼 지역에서 항공유를 들여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산 항공유의 존재감이 크게 높아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유럽행 항공유 수출량은 9월 하루 평균 12만9천 배럴에 달해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 정유업계의 생산량도 증가했다. 한국의 7월 항공유 생산량은 약 1천389만 배럴로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적으로 항공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한국 정유사들이 유럽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할 경제적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유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지만 대규모 정유시설을 갖추고 있어 원유를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다시 해외에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상황은 한국 정유업계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중동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유럽의 부족분을 일부 보완할 수 있는 공급처로 부상한 것이다.

다만 한국 역시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원유 가격이 높아지면 정유사의 원료비 부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수출량 증가만으로 업계 전체의 수익성이 개선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항공유 공급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유럽 항공사들의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항공유는 항공사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면 항공권 가격이나 항공사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유럽의 항공유 시장은 중동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미치는 파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주요 수송로가 추가로 차질을 빚을 경우 유럽뿐 아니라 세계 항공산업 전체의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