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원유 수송망이 잇따라 마비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의 이란 전쟁 개시로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이 제약된 데 이어, 그간 우회로로 활용되던 홍해 항로마저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 손에 넘어가고 육상 송유관마저 드론 공격을 받아 차단되면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홍해 요충지 장악부터 사우디 육상 파이프라인 피격까지

후티 반군은 홍해 연안의 주요 항구인 모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요충지인 페림섬을 차례로 장악하며 홍해 진입 통제권을 사실상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에는 리야드와 메디나를 겨냥한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의 핵심 송유관인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 라인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홍해 해상마저 막히자 사우디가 가동하던 또 다른 대체 수송로였다.

사우디를 타격한 드론이 발사된 지점은 예멘이 아닌 이라크 영토 내부였다.

이라크 총리실은 12일 자국에서 드론이 발사된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군 지휘관 1명을 긴급 해임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이 예멘의 후티 반군과 공조해 사우디를 겨냥한 복합 군사 작전을 전개한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골프 즐기며 사우디 지원 요청 거부

아일랜드에서 열린 골프대회(아일랜드 오픈)에 참석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면서도 "그들은 지금 기세등등할 뿐"이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이어 후티 반군이 미국에는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않고 사우디에만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외신 및 중동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측에 후티 반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공격을 요청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과거부터 중동의 '영원한 전쟁(Endless Wars)'에 미국 청년들의 피와 세금을 쏟아붓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다.

호르무즈해협이나 홍해의 항로 차단이 사우디 등 중동 국가와 유럽·아시아에 타격을 줄지언정, 미국 본토의 직접적인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무리하게 지상군을 보내거나 대규모 군사 작전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미국은 이란 본토를 타격해 체제를 압박하고 있으나, 이란이 대리 세력(후티 등)을 통해 사우디를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사우디 스스로 방어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선을 긋고 있다.

이란의 네트워크가 기세등등해 보이는 것은 일시적 현상일 뿐,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면 결국 이란 경제와 정권이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장기적 안목의 '지속 가능한 봉쇄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의 전략은 적극적인 중동 평화 중재나 동맹국 구하기보다는 "미국의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선거까지 정세를 관리하며, 동맹국들이 알아서 각개격파하도록 방치한다"는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적 무관심과 압박의 줄타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사우디 등 전통적 우방과의 동맹 관계를 약화시키고,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을 오히려 키워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이 아니라 무책임한 방관에 가깝다"는 비판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이란의 '대리 네트워크' 본격 가동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후티 반군 전문인 에담 배런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은 이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중동 내 이란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력하고 통합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증명했다"고 진단했다.

이란 본토가 일부 타격을 입었을지라도 수년간 준비해 온 대리 세력 네트워크의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이 다가오는 중간선거 직후에 끝날 것이며 유가도 곧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전쟁 직전 배럴당 70달러선이었던 국제유가는 현재 11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역시 갤런당 4.3달러를 넘어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