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사상 초유의 테러 참사가 벌어진 그날, 승객과 승무원 200여 명을 태우고 미국 영공을 비행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납치범들의 조종에 넘어간 것으로 오인되어 미·캐나다 공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될 뻔했던 아찔한 사실이 외신 보도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항로 변경으로 시작된 오해

당시 뉴욕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85편은 연료를 보급하기 위해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연쇄 충돌 직후 북미 영공이 전면 폐쇄되면서 캐나다 유콘 준주의 화이트호스로 항로를 우회했다.

'HJK' 코드 발신으로 발칵

2002년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한항공 085편 조종사가 미 영공 진입 과정에서 민간항공 무선통신업체 ARINC를 통해 운항부에 전송한 문자 중에 ‘HJK’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항공 교통 용어에서 통상 '납치(Hijack)'를 뜻하는 암호였다.

‘7500’ 비상 코드 입력으로 더 커진 논란

이어 지상관제소가 납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요청하자 조종사가 트랜스폰더(식별 장치)에 납치 비상 신호인 ‘7500’을 입력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조명한 다큐멘터리 등에 따르면, 미 연방항공청(FAA)이 조종사에게 직접 7500 입력을 지시했다는 기록과 교신 음성이 남아 있어, 왜 납치 상황이 아닌 항공기에 이 코드가 입력되었는지를 두고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최고 지도부의 격추 승인과 전투기 출격

당시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장 크레티앙 캐나다 총리는 지상의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필요할 경우 납치 의심 민간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도록 최종 승인한 상태였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소속 미·캐나다 전투기들이 긴급 출격해 알래스카 상공에서 대한항공 085편을 요격하려 했으며, 화이트호스 공항까지 밀착 호위했다.

당시 화이트호스 공항 일대에는 대피령이 내려졌고, 건물 옥상에 저격수들이 배치되는 등 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한항공 085편은 오전 11시 54분 화이트호스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왕립캐나다기마경찰(RCMP)이 총을 겨눈 채 기내에 진입했으나 납치범이나 폭발물 등 위협 요소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승객과 승무원 모두 무사했다.

언어 장벽 해프닝인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인가

대한항공과 FAA는 9·11 테러 직후 극도로 예민했던 미 전역의 긴장 상태 속에서 조종사와 관제소 간의 의사소통 오류 및 언어 장벽이 겹쳐 빚어진 해프닝(오경보)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남겨진 의문들은 여전하다.

유콘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맥스 프레이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이곳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화이트호스 9·11 이야기')에 따르면, 전직 RCMP 조사관은 조종사의 영어 능력에 문제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조종사가 처음 보낸 'HJK' 메시지의 정확한 경위와 FAA가 7500 입력을 유도한 배경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항공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해프닝 중 하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