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용제를 '리퀴드 엑시터시'로 유통… 최소 10년에서 최대 종신형 직면
한국과 미국을 잇는 거대 마약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국발 '데이트 강간 약물'과 캘리포니아의 메탐페타민이 결합된 초대형 국제 마약 공급망이 수사당국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이다.
특히 한국이 마약 소비국을 넘어 마약 생산국, 즉 글로벌 공급의 '경유지 혹은 발신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동남아나 남미에서 생산된 마약이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가는 '경유지' 역할이 컸지만, 한국 내에 제조 및 수출 베이스를 두고 미국 본토로 직접 쏜 것은 한국의 정교한 물류 시스템과 'K-브랜드'의 신뢰도가 범죄에 역이용당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수입 검사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점을 노려 유령 화장품 회사를 세운 점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화장품 회사로 위장한 마약 허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조직된 국토안보 태스크포스(HSTF)는 지난 3년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서울과 워싱턴, LA를 잇는 범죄 네트워크를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미 연방법무부(DOJ)와 워싱턴 D.C. 연방검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데이트 강간 약물'로도 사용되는 산업용 화학물질을 세계에 유통해 온 국제 범죄 조직이 적발됐다.
기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뉴욕과 워싱턴 D.C.에 유령 화장품 회사를 설립해 화장품으로 위장한 마약을 유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수입되는 대량의 GBL(감마부티롤락톤)을 '네일 리무버(화장품)'이나 '뷰티 세정제'로 허위 신고했다.
GBL은 체내 흡수 시 '물뽕'으로 불리는 GHB로 변하며 의식 상실과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 물질이다.
GBL 자체는 산업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용 용제(반도체 세정제, 페인트 제거제 등)이지만, 인체에 들어가면 즉시 GHB로 변환되어 강력한 마약 효과를 낸다.
조금만 용량이 초과되어도 호흡 저하, 경련, 혼수상태에 빠지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산업용으로 쓰인다는 점을 악용해 이번 사건처럼 '세정제'나 '화장품 원료'로 위장해 밀수되는 경우가 많다. 마약류로까지 악용될 수 있다.
유통 경로는 한국에서 캘리포니아, 미 동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생산한 뒤 캘리포니아에서 조달된 메탐페타민은 UPS와 USPS 등 일반 택배를 통해 미 동부 전역으로 배달되었다. 이들은 암호화 메신저와 코드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수사망을 피해왔다.
'자금 세탁'의 고도화
국세청(IRS) 범죄수사국은 이들이 마약 거래 수익을 일반 사업 수익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온라인 결제 플랫폼과 유령 법인 계좌를 복잡하게 얽어놓았다고 밝혔다.
범죄 수익은 다시 조직의 세력 확장을 위한 자금으로 재투입되었다.
한·미 공조의 결정판 "서울에서의 체포된 용의자들"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수사기관과의 긴밀한 공조였다.
수사팀은 한국의 수출업자 안소현(Sohyoen An)을 이번 국제 공급망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
안 씨는 한국에서 생산된 GBL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호주까지 대량 공급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2025년 9월, 한국 수사당국은 안 씨의 거점에서 약 1.5톤의 GBL을 압수했다. 이는 한국 마약 수사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미 수사팀은 한국에 직접 파견되어 안 씨를 포함한 관련자 5명을 체포하는 데 기여했다.
최대 종신형 가능
기소된 11명은 고순도 메탐페타민 및 GBL 유통, 자금 세탁, 총기 소지 등 다수의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연방법에 따라 이들은 유죄 확정 시 최소 10년에서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대 종신형'이라는 미국의 강력한 처벌 수위는 한국 내 마약 범죄자들에게도 큰 경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상대적으로 관대한 마약 처벌 수위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지닌 피로 워싱턴 D.C. 연방검사장은 "이번 작전은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 조직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며 "공급망 전체를 추적해 뿌리를 뽑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산업용 화학물질'이라는 법망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신종 마약 범죄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 당국이 한국 수사기관과 손잡고 공급책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한 이번 사례는 향후 국제 마약 수사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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