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두 달째 이어지면서, 해당 해역에 발이 묶인 한국인 선원들이 극심한 불확실성과 피로감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현재 우리 선박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아부다비 인근 해역에서 닻을 내린 채 대기 중이다.
긴장은 줄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
페르시아만 해역에 정박 중인 선원 A씨는 1일 연합뉴스와 SNS를 통해 “휴전 합의 소식에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양국의 대치가 다시 격화되면서 확전의 두려움을 느꼈다”며 현장의 냉온탕식 분위기를 전했다.
사우디 등 인근 국가에서 대기하던 선박들까지 UAE 해역으로 모여들면서 해상 정박지는 포화 상태이지만, 출항 시점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다행히 사태 초기와 비교해 주변 군함의 움직임이나 경고 방송은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고통이다.
선내 생활은 ‘안정’… 하지만 물가는 ‘폭등’
선원들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큰 차질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나, 장기화에 따른 현실적인 고충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식수와 식량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으며 추가 보급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지 물가 상승으로 생필품 가격이 20~30% 이상 올랐으며,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식단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해상 정박 상태라 육지 외출이 전면 금지되어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가 극심하다. 선원들은 좁은 선내에서 운동이나 음악 감상으로 답답함을 달래고 있다.
선원 교대 진행… 한국인 선원 173명 → 161명
다행히 선사 측의 강요 없는 선원 교대가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한국인 선원들이 하선하면서, 고립된 한국인 인원은 173명에서 161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새로 충원된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선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선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의 대응이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립된 선원들은 "기대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며, "현장의 실질적인 상황을 반영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선원들은 정부의 직접적인 구조나 가이드라인보다는 외신 뉴스, SNS, 해상 안전기관의 정보에 의존해 위험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안전 최우선'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봉쇄가 두 달을 넘긴 시점에서 선원들의 안전한 귀환과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적 보급 대책, 그리고 외교적 해결을 통한 통로 확보 등 보다 구체적인 행동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국제 정세와 현실적인 외교적·군사적 한계가 얽혀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딜레마: 미국의 '파병 요청' vs 이란과의 '우호 관계'
정부가 가장 고심하는 지점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의 '외교적 줄타기'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를 위해 한국군 군함 파견이나 다국적 공조 참여를 강력히 독촉하고 있다.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에는 한미 동맹의 부담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란과의 관계가 문제다. 현재 테헤란에 남은 몇 안 되는 대사관 중 하나가 한국 대사관일 정도로 양국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미국 주도의 군사 행동에 동참할 경우, 이란을 자극해 우리 선박이 직접적인 공격 타깃이 될 위험이 있다.
물론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 선박을 제외하고는 통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선박은 통과를 못하고 있다.
'개별 협상 불가' 원칙과 다국적 공조의 틀
일본이나 프랑스 등 일부 국가의 선박들은 우회로나 제3국 합작 지분 등을 활용해 통과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개별 협상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 사회의 다국적 공조 체제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기에, 특정 국가(이란)와 물밑에서 개별적으로 협상하여 선박을 빼내 오는 행위가 국제적인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순수 국내 자본 위주인 우리 선박들의 선택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군사적 대응의 실효성 및 위험성
군함을 파견해 선박을 구출하는 시나리오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란과의 전쟁은 "위험한 도박"이며, 군사적 대응이 전면전이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식 장기 혼란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군함 투입이 '전투'로 간주될 경우 국회 비준 등 복잡한 국내 정치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는 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
정부의 현재 집중 전략: '실무적 지원'
정부는 직접적인 구출 작전보다는 해운사와 선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경제적·행정적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고립된 선박들이 부담하는 유류비, 전쟁 보험료, 선원 위험 수당 등으로 인한 경영난을 돕기 위해 '무담보 신용보증' 신설 및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통해 선박들의 위치와 선원들의 안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해협에 갇힌 선원들도, 국민들도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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