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대규모 단속이 발생한 지 약 1년 만에 당시 구금 과정과 처우를 둘러싼 책임 문제가 법적 절차로 이어지면서 한미 양국의 이민·비자 정책과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환경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최근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행정상 손해배상 청구 절차에 들어갔다. 이번 청구에는 국토안보부(DHS), 이민세관단속국(ICE), 관세국경보호국(CBP), 연방수사국(FBI), 법무부, 노동부 등 모두 9개 연방기관이 대상에 포함됐다.
행정 청구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다. 노동자 측이 행정 청구를 제기한 것은 향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변호사 측은 올해 말까지 관련 청구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출발점은 2025년 9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러벨에 있는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대규모 연방 단속 인력이 투입됐다. 이 단속으로 모두 475명이 체포·구금됐으며, 이 가운데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자였다.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중무장한 단속 요원들이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일부 한국인 노동자들이 수갑과 족쇄를 착용한 채 이동하는 모습도 공개되면서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큰 논란이 일었다.
단속 이후 한국 정부는 미국 측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석방 및 귀국 문제를 협의했다. 구금된 한국인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 기술인력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불법체류 단속을 넘어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와 전문인력 파견 문제로 확대됐다.
이번에 법적 대응에 나선 노동자들은 당시 구금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통역을 받지 못했고, 열악한 구금 환경에 놓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노동자는 자신의 소지품이 압수됐고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 손실을 입었으며 정신적 피해까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노동자는 자신의 행정 청구에서 구금 기간 동안 겪은 처우와 심리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노동자 측은 불법 감금, 절차 남용, 고의적인 정신적 고통 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 실제 소송이 진행될 경우 미국 법원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다만 미국 정부는 단속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노동자 측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당시 단속이 불법 고용 관행 및 기타 중대한 연방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의 일환으로 사법적 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세국경보호국 역시 당시 체포된 일부 사람들이 비자 또는 체류 자격 조건을 위반해 미국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기존 입장을 제시했다.
따라서 이번 법적 절차의 핵심은 단순히 체포가 적법했는지를 넘어 당시 현장 노동자들의 실제 체류·취업 자격, 단속 과정에서의 절차 준수 여부, 구금 중 처우와 통역 제공 여부, 연방기관의 행위가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등을 둘러싼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인 노동자 측이 문제를 제기한 대상에는 단일 이민기관이 아니라 9개 연방기관이 포함돼 있어 향후 법적 공방의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행정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관련 법률에 따라 연방법원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기반을 확대해 왔고, 미국 현지 공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 본사의 기술인력과 협력업체 인력이 미국에 파견돼 왔다.
조지아 단속 이후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한국 전문인력의 미국 내 활동과 관련한 비자 문제를 놓고 협의를 이어갔다. 당시 사건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현장에 필요한 기술인력을 어떤 체류 자격으로 파견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됐다.
이번 행정 청구는 그동안 외교적·정책적 논의에 머물렀던 문제를 개인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 문제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미국 정부의 단속 과정에 법적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향후 관련 자료와 법원의 심리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아 대규모 단속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법적 절차를 시작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향후 미국 정부의 대응과 행정 청구 결과, 그리고 연방법원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법원의 판단이 한미 양국의 전문인력 비자와 기업 투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