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함정의 심각한 노후화와 건조 역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정계와 방산 업계가 동맹국인 한국과의 ‘조선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함정 건조 원칙을 일부 수정하여 한국의 설계·건조 능력을 활용하는 ‘분산형 조선(Distributed Shipbuilding)’ 모델이 강력한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분산형 조선’이란 무엇인가
현재 미국 법령(번스-톨레프슨법)은 해군 함정의 외국 건조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건조 역량 한계에 직면한 미국은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아미 베라(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선체 등 함정의 75~80%를 한국에서 건조하고, 미국에서 최종 조립 및 테스트를 수행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CEO는 이를 '록히드마틴 모델'로 정의했다. 전투기 부품을 전 세계에서 조달해 미국에서 최종 조립하는 것처럼, 군함 역시 모듈화하여 한국의 효율적인 건조 역량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미 주요 기업의 대응 및 전략
국내 조선사들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식재산권(IP)의 현지화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는 IP를 미국 내에 둠으로써 공급망 불안에 대한 미 정부의 우려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 협력을 넘어선 생태계 구축을 중시하고 있다.
홍석환 HD현대 미국법인장은 "조선은 거대한 팀워크"라며, 미국 내 협력업체 및 엔지니어링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현지 생산성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에 방점을 찍고 있다.
넘어야 할 현실적 과제
정책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미 현지에서는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군함 건조는 미국의 일자리와 직결되어 있어, 미 노조와 지역 정치인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미 해군이 건조 도중 설계를 수시로 변경하는 경직된 특유의 발주 관행 역시 건조 속도를 늦추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된다.
숙련된 인력 부족으로 인한 미국 현지의 낮은 생산성은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미 해군이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에 전투함 및 급유함 관련 정보 요청(RFI)을 보낸 것은 한국 조선업의 역량을 공식적으로 신뢰하고 이를 자국 산업 재건에 활용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비전투함의 외국 건조 허용 조항이 포함되는 등 규제 완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어, 향후 전투함까지 대상이 확대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 조선업의 미국 진출은 글로벌 조선 패권 구도를 한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나, 미국 정부의 기술 이전 요구와 현지화 압박 사이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기술적 주도권을 지켜낼지가 향후 협상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