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국왕이 지난 28일, 4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 중 워싱턴 D.C.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다.
이번 방문은 그가 영국 군주로서 미국을 공식 국빈 방문한 첫 번째 사례다.
찰스 국왕과 커밀라 왕비는 미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긴밀한 유대를 강조하고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다.
이는 1991년 엘리베이터 2세 여왕, 1939년 조지 6세 국왕에 이은 영국 군주의 역사적인 행보다.
국왕은 때때로 미국 독립혁명을 "두 명의 조지(조지 3세와 조지 워싱턴) 이야기"라고 표현하거나, "교묘한 후방 기습 작전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농담을 던지며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어 그는 양국의 오랜 동맹과 공유된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진지한 담론을 이어갔다.
기독교는 '든든한 닻이자 일상적인 영감'
영국 성공회(국교회)의 수장이자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가진 영국 왕 찰스 3세는 이날 연설에서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과 저에게 기독교 신앙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를 인도하는 든든한 닻이자 일상적인 영감입니다."
그는 평생을 타 종교 간 화합을 위해 헌신해왔음을 언급하며, "어둠에 승리하는 빛에 대한 믿음을 수없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부활절 절기가 주는 희망을 언급하며 모든 이들의 평화와 상호 이해를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습니다.
공유된 유산: 민주주의의 뿌리
찰스 국왕은 미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와 권리장전이 영국의 유산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미국 혁명가들은 영국 계몽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품고 나아갔습니다. 이 뿌리는 깊고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원칙이 당시엔 갈등의 씨앗이었으나(미국 독립혁명과 독립전쟁의 불씨가 됨), 결국 두 나라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민주주의 가치가 되었음을 역설했다.
9/11 테러의 기억과 안보 동맹
찰스 3세는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9/11 테러를 언급하며 미국에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비극은 미국의 정의를 내린 순간이었고, 여러분의 고통과 충격은 전 세계에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날을 추모하는 지금도 여러분 곁에 서 있습니다."
나토(NATO) 제5조(집단방위) 발동을 언급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양국이 함께 싸웠음도 상기시켰다. 특히 현재의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과거와 같은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 보호와 세대적 책임
오랫동안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국왕답게 미국의 자연 유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세대는 붕괴해가는 천연 시스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해야 합니다. 자연의 경제는 우리 번영과 국가 안보의 기초입니다."
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인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공통된 책임임을 촉구했다.
다양성과 세계 속의 미국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다양성에서 힘을 얻었음을 언급하며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집단적 힘입니다. 미국 의회는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닌, 미국의 살아있는 모자이크를 대표하는 수많은 이들의 숙의를 바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는 미국이 고립주의로 흐르지 않기를 기도한다며, "미국의 말은 무게와 의미를 지니며, 이 위대한 국가의 행동은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찰스 국왕은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양국이 서로를 위해, 그리고 전 세계 인민을 위해 헌신하자"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
찰스 3세 국왕의 이번 미국 의회 연설은 미 건국 250주년을 맞아 양국의 유대를 강화하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외교적 이정표가 되었다.
전 세계가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실리를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찰스 국왕은 워싱턴에서 '공유된 신앙'과 '민주주의의 뿌리'를 강조하며 전통적 가치를 통한 결속을 호소했다. 이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영미 동맹이라는 고전적인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든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이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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