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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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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가 뭉개버린 천년의 역사"… 트럼프 국경 장벽 건설 도중 원주민 지상화 훼손 '논란'

이지은 기자
"불도저가 뭉개버린 천년의 역사"… 트럼프 국경 장벽 건설 도중 원주민 지상화 훼손 '논란'
1천년 전 만들어진 물고기 모양 원주민 지상화의 남쪽 부분이 훼손되었다. / 사진 출처 https://www.archaeologysouthwest.org/ 캡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공약인 남부 국경 장벽 확장 사업이 1천년 전 원주민 유적을 훼손하며 미국 내에서 거센 비난의 중심에 섰다.

사막 지대의 바닥에 그려져 있고,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지상화 유적의 특성으로 인해 작업 도중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애리조나주 국경 지대에서 진행 중인 장벽 건설 공사가 고대 원주민의 성스러운 유적을 파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강행 돌파식 정책이 문화유산 보호와 정면충돌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으로 승인된 516억 달러(그중 45억 달러는 이미 애리조나주 계약에 할당됨)를 투입해 장벽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훼손된 '라스 플라야스 인탈리오'의 가치

이번에 훼손된 유적은 애리조나주 아호(Ajo) 서쪽 국경에 위치한 '인탈리오(Intaglio, 지상 음각화)'다.

최소 1,0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적은 약 61미터 길이의 거대한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다.

민간 위성 업체 반토르(Vantor)의 이미지 분석 결과, 공사용 불도저가 유적의 약 3분의 1(18~21미터)을 가로질러 주행하며 형상을 짓밟은 흔적이 선명하게 포착됐다.

유적 주변에 차량 진입 방지용 바위가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월' 건설을 위한 이중 장벽 및 광범위한 '집행 구역(Enforcement Zone)'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불도저가 부주의로 유적의 남쪽 절반을 그대로 밀어버리는(blade through)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지상 음각화는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이 아니라, 사막 지표면의 어두운 자갈(사막 포도, desert pavements)을 긁어내어 아래의 밝은 흙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지면과 높이 차이가 거의 없으며, 공사 현장의 작업자 시점에서는 단순한 노면이나 평지로 오인하기 쉽다.

인탈리오는 사막 포도 표면을 긁어내어 만든 문양인데, 사막 포도는 소노란 사막이나 모하비 사막처럼 매우 건조하고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형성된 다져진 자갈 지면을 말한다. 이번에 훼손된 라스 플라야스 인탈리오는 물고기를 희미하게 닮은 모습이었다.

인탈리오는 수십, 수백 개의 특징이 얽힌 복잡한 복합체의 일부인 경우가 많다. 인탈리오와 연결된 수많은 복합 유적들은 매우 정교하고 희미하며, 원형의 빈터, 돌무더기, 돌 반지, 낮은 자갈 언덕, 그리고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희미한 선들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문제는 인탈리오는 식별하기 쉽지만, 다른 요소들은 빛이 예리한 각도로 비치는 특정 시간대에만 겨우 보일 정도로 희미하고 식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서, 사막의 강한 직사광선 아래서 작업하는 중장비 작업자들이 인지하지 못해 유적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2차 장벽과 집행 구역을 만들기 위해 불도저로 유적을 그대로 밀어버리고(blade through) 긁어낸 것이다.

문제는, 길이 61미터에 달하는 거대 지상화에서 약 20미터 구간이 불도저에 의해 뭉개졌다는 것은 유적의 핵심적인 형상과 역사적 가치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

한번 불도저 바퀴 자국으로 뒤섞인 토양과 형상은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최소 1,000년 동안 비바람을 견디며 보존되어 온 유적이 단 몇 분의 공사 부주의로 허무하게 파괴되었다는 점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당국의 시인과 원주민의 분노

사건이 공론화되자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부주의를 인정하며 수습에 나섰다.

존 멘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계약 업체의 부주의로 '라스 플라야스 인탈리오'가 훼손됐다"며 "남은 부지는 확보하여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부족 '히아-세드 오드햄'의 로렌 마케즈 아일러 원로는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비를 파괴한 것과 같다"며 조상의 혼이 담긴 유적 파괴에 깊은 비통함을 나타냈다. 또한 원주민의 역사를 경시하는 행정부의 태도에 깊은 분노를 표하고 있다.

해당 지역 원주민 부족인 '히아-세드 오드햄'에게 이 유적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조상과 연결된 성스러운 장소다.

조사관 아론 라이트는 비영리 고고학 전문 단체인 <아키올로지 사우스웨스트(Archaeology Southwest)>에 건설업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 알기나 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유적의 희귀성과 보존 가치에 대한 현장 관리의 부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유적 훼손 문제를 넘어 미국 사회에서 복합적인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이미 장벽이 존재하는 구간에 보안 강화를 이유로 465억 달러(약 69조 원)를 투입해 '두 번째 장벽'을 세우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막대한 예산과 중복 건설 논란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멸종 위기종 서식지인 '퀴토바퀴토(Quitobaquito)' 샘과 원주민 묘역 등 국경 인근의 다른 유산들도 파괴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신속한 공사를 위해 환경법 및 문화유산 보호법을 무력화하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권 단체와 환경 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 장벽의 신속한 건설을 위해 '리얼 ID법(Real ID Act)' 등을 근거로 환경법과 문화재 보호법 등 수십 개의 연방법 적용을 면제해 왔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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