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 상장을 통해 글로벌 자본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SK하이닉스가 단순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를 넘어 인공지능(AI) 서비스 제공 업체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 나스닥 상장 기념 인터뷰에서 AI 분야에 대한 수백억 달러(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의지를 밝히며, AI 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HBM 수요 기하급수적 급증... 여전히 물량 부족

최태원 회장은 구글,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향후 5년 내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에도 불구하고 고객사들은 여전히 물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또한 메모리 수요가 2030년대까지도 회사의 생산 능력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며, "내년은 공급 측면에서 업계 역사상 가장 힘든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일각의 '반도체 사이클 고점' 또는 'AI 버블' 우려에 대해 최 회장은 "AI 기술은 실체"라며, 기존 기기 중심의 수요와는 구조 자체가 다른 AI 시대의 메모리 수요는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의 공급 능력은 그 수요를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 AI는 4~5세의 어린 아이 수준인데, 인류가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AGI(범용 AI)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SK의 비전: '메모리 서비스 제공 업체'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를 단순히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 AI 기술 및 스타트업 분야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여 각 시장에 최적화된 맞춤형 스택(Stack)을 제공하는 '메모리 서비스 제공 업체'로 거듭날 계획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는 무형의 상담 서비스가 아니라 '기술적 최적화'를 뜻한다. 반도체라는 부품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의 AI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솔루션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정해진 규격(DDR5 등)의 칩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필요한 고객사에 납품하는 '제조업'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잘 만들어진 나사를 규격에 맞춰 파는 것과 비슷하다. 고객사가 이 나사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고객사의 고민이지, 반도체 회사의 고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AI 모델이 워낙 복잡해지다 보니, 고객사(엔비디아, 구글 등)마다 필요한 메모리의 특성이 다 다르다. 이에 따라 단순 공급이 아닌 협업의 관계로 바뀌어, "우리 칩 사가세요"가 아니라, "당신들이 개발하는 AI 시스템의 설계 단계부터 우리가 참여할게요"라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게 된다.

이때 맞춤형 스택(Customized Stack)으로 고객의 AI 인프라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하도록, 메모리 구조 자체를 그 고객의 AI 모델에 딱 맞춰서 커스터마이징해 준다.

미국 추가 투자 검토

최 회장은 현재 인디애나주 40억 달러 투자 외에도, 적합한 장소가 확보될 경우 미국 내 추가 반도체 팹(생산시설) 투자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

중국 공산 내 생산 물량의 70%가 중국 외부로 출하되어 미국 고객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철저히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이번 상장을 통해 글로벌 자본시장에 접근함으로써 전 세계 인재 채용이 용이해졌으며, 새로운 글로벌 주주들과 함께 지배구조 체계를 고도화할 동력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15년 전 하이닉스 인수 당시 최태원 회장이 품었던 꿈이 현실화된 '역사적 순간'으로 평가하며,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장이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기업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기적인 고객 맞춤형 계약 전략이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