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요동치던 국제 유가가 최근 휴전 협상 소식에 배럴당 90달러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미국 운전자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기름값이 오를 때는 즉각적으로 반영되더니, 정작 하락세에는 "깃털처럼 천천히" 내려가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 가격판 앞에서 한숨 섞인 농담처럼 오가던 이야기가 사실은 경제학적으로 증명된 현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BS 뉴스, 그리고 스탠퍼드 경제정책연구소(SIEPR) 등 주요 매체와 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로켓과 깃털(Rockets and Feathers)'이라 명명하며 집중 분석하고 있다.
로켓처럼 쏘아 올린 '전쟁 특수'
미국 자동차 협회(AAA)에 따르면, 5월 8일 현재 전국 평균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4.55달러로 1년 전보다 1.40달러 이상 치솟았다.
이란과의 갈등이 고조되자마자 주유소들은 '재고 보충 비용(Replacement Cost)' 논리를 내세워 가격을 순식간에 올렸다. 이른바 '로켓 현상'이다.
도매가가 오르면 다음 물량을 사 올 돈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깃털처럼 느릿한 하락… 범인은 '소비자 행동'?
스탠퍼드대 매튜 루이스(Matthew Lewis) 교수 등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의 주범으로 주유소의 탐욕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꼽는다.
기름값이 로켓처럼 오를 때 소비자는 1센트라도 싼 곳을 찾아 혈안이 된다.
하지만 가격이 조금이라도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제 좀 내리는구나" 안심하며 가격 비교를 멈추고 가까운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들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윤(Margin)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 인하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 이것이 바로 '깃털 현상'이다.
미디어의 '확성기 효과'도 한몫
언론들은 자신들의 보도 행태가 이 현상을 심화시킨다고 자성 섞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상승 시에는 "기름값 역대 최고", "주유소 가기 무섭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소비자를 긴장시킨다.
하지만 유가 하락 소식은 경제 섹션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는 가격이 충분히 내려갔는지 알 수 있는 정보를 놓치게 되고, 주유소는 경쟁 없이 고단가를 유지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의 '끈적한(Sticky)' 고유가
특히 캘리포니아(평균 6.16달러)처럼 임대료와 인건비가 비싼 지역은 가격 하락이 더 더디다.
브랜드 주유소가 장악한 지역일수록 가격은 더 '끈적하게(Sticky)' 유지된다.
반면 저렴한 독립 주유소가 많은 동네는 가격 경쟁이 붙어 깃털이 조금 더 빨리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정보가 힘이다
CBS 뉴스는 "국제 유가가 꺾였다고 해서 주유소 주인이 먼저 가격을 내려주길 기다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가스버디(GasBuddy) 같은 앱을 통해 가격 하락기에 더 적극적으로 저렴한 곳을 찾아다니는 행동이 '깃털'의 낙하 속도를 높이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2026년의 고유가 고통은 국제 정세가 안정되어도 한동안 '깃털'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우리 곁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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