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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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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한국어 수업 83년’ 만에 첫 한국학 전공자 배출

독립운동가 최봉윤의 집념이 일궈낸 결실… 학부 개설 1년 만에 3명 졸업

이성민 기자

미 서부의 명문 UC버클리가 미국 대학 최초로 한국어 수업을 개설한 지 83년 만에 공식적인 ‘한국학 전공’ 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1943년 독립운동가 최봉윤 선생이 뿌린 씨앗이 83년 만에 '전공 졸업생'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19일 열리는 졸업식에서 학위를 받는 3명의 주인공은 한국학이 단순한 ‘외국어 배우기’를 넘어 깊이 있는 학문적 영역으로 뿌리내렸음을 입증하고 있다.

UC버클리의 한국학 졸업생 배출 소식은 단순히 한 대학의 학위 수여를 넘어, 미 서부 지성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83년의 기다림: 최봉윤 선생의 씨앗에서 한국학 전공까지

UC버클리의 한국학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양어학과에 재직 중이던 독립운동가 최봉윤 선생이 학교 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미국 대학 최초의 한국어 강좌를 열었다. 그는 직접 교재를 집필하며 미 대륙에 한국학의 기틀을 닦았다.

현재 UC버클리의 한국어 수업은 연간 500여 명이 수강하는 인기 강좌로 성장했으며, 2023년 프로그램 80주년을 맞아 ‘최봉윤 장학금’이 신설되는 등 그 역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고 있다. 83년 전 최봉윤 선생이 홀로 외치던 목소리가 이제는 연간 500명이 듣는 주류 학문이 된 것이다.

대학 강의에서 '연간 500명'이라는 숫자는 해당 외국어 프로그램이 그 학교에서 '메이저급'으로 완전히 안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미국 대학의 인기 교양 과목이나 경제학 입문 같은 대형 강의가 한 학기에 150~200명 정도 듣는다.

한국어 수업이 연간 500명이라면, 매 학기 이런 대형 강의실 1~2개가 꽉 차고도 남는 인원이 매일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어학 수업은 회화 중심이라 보통 한 반에 20~25명으로 제한한다. 500명을 수용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한 학기에 약 10~12개의 한국어 반이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 '7명의 전담 강사'가 쉴 틈 없이 수업을 해야 겨우 감당 가능한 숫자다.

미국 대학에서 전통적인 '빅 3' 외국어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로, 과거 한국어는 '기타 외국어'로 분류되어 강사 한 명이 전 학년을 가르치거나 수강생이 없어 폐강 위기를 맞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UC버클리 캠퍼스를 걷다 만나는 학생 50~60명 중 한 명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첫 졸업생들의 성과: “향찰부터 기지촌 연구까지”

이번에 배출되는 3명의 졸업생은 한국의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고대 언어와 여성사 등 심도 있는 연구 성과를 보여주었다.

졸업생 김소영 씨는 고대 표기법인 ‘향찰’과 고전문학 1차 사료를 직접 연구할 수 있는 버클리만의 깊이 있는 커리큘럼에 자부심을 표했다.

조앤 문 씨는 윤동주의 시와 한국전쟁, 분단의 역사를 공부하며 한인 2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는 하와이대 대학원에 진학해 일제강점기 이주 여성과 기지촌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단순히 한국말을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향찰'을 분석하고 1차 사료를 파헤치는 졸업생이 나왔다는 것은 한국학이 미국 내에서 학문적 독자성을 완벽히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매년 수강생이 500명이나 될 정도로 탄탄한 저변이 있었기에, 그중에서 인생을 걸고 한국을 연구하겠다는 '독종' 전공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남겨진 과제: 식민주의 탈피와 대학원 과정 신설

한국학의 외연 확장에 따른 학계 내부의 성찰적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재 동아시아도서관의 한국 고서적들이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사미 린타로의 이름을 따 ‘아사미 문고’로 명명된 것에 대해, 학생들이 식민주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명칭 변경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역사가 보존된 방식(식민주의)까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적 품격'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안진수 교수를 중심으로 학부 과정을 넘어 전문 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한국학 대학원’ 설치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학의 급성장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러한 학문적 깊이와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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