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2박 3일 베이징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용기(에어포스 원) 안에서 "중국이 보잉 항공기 우선 200대, 향후 최대 750대까지 구매하기로 약속했다"며 이를 이번 회담의 최대 전리품으로 치켜세웠다.
외교가와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한 침묵과 독재자 미화 논란 속에서도 왜 하필 '보잉'을 최전방에 내세웠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계약을 넘어 미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급소와 트럼프의 정치적 명줄이 '보잉'이라는 단일 기업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대마(大馬)', 보잉의 위상
구글, 애플,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증시를 이끌고 있지만, 실물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내다 파는 '전통 제조업 수출' 부문에서 보잉은 독보적인 미국 내 1위 기업이다.
경제학에는 특정 기업의 충격이 국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뜻하는 '도마 가중치(Domar weight)'라는 개념이 있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의 분석에 따르면 보잉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보적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보잉이 흔들리면 미국 전체 GDP 성장률의 소수점 자리가 바뀐다. 과거 보잉 737 맥스 기종의 결함으로 잠시 생산이 중단되었을 당시, 미국 분기 GDP 성장률이 약 0.4%포인트 가량 전례 없이 주저앉았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단 일개 기업의 공장이 멈췄을 뿐인데 선진국인 미국의 국가 경제 성장률이 눈에 띄게 주저앉은 것이다.
보잉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직·간접적 자산 가치만 연간 약 970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한다. 보잉은 미국 GDP를 들었다 놨다 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보잉은 미국의 심각한 무역 적자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기도 하다. 트럼프 정부가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고 할 때, 비행기 한 대당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보잉의 수출 실적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단숨에 메워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ITA) 보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체결한 대규모 해외 계약 성과(약 2,440억 달러) 중 무려 85% 이상이 보잉 항공기와 관련 엔진 수출에서 나왔다. 트럼프가 괜히 "나는 보잉 최고의 영업사원"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더욱이 보잉은 1만 개가 넘는 미국 내 중소 부품 협력업체와 엮여 있으며, 이로 인해 유발되는 직·간접 고용 인구는 140만 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 제조업의 부활(MAGA)'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표밭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백인 노동자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미국의 전통 제조업에 종사하는 백인 노동자들이며, 보잉은 이들의 생줄을 쥐고 있다. 보잉의 수주 잔고가 떨어지면 미국 50개 주 전역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실직하게 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잉의 수주 잔고를 채워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트럼프에게 보잉을 살리는 것은 곧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표밭'을 지키는 일이다.
미국 경제에서 보잉의 위치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대마불사(大馬不死), 망하게 두고 싶어도 절대 망하게 둘 수 없는 국가 대표"다. 아무리 금융이나 테크가 발전했어도 국가의 근간은 여전히 제조업인데, 미국에 남은 마지막 거대 제조업의 보루가 바로 보잉이다.
트럼프가 보잉 비즈니스를 위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 "독재자든 아니든 존경한다"며 립서비스를 해주고 대만 문제까지 대충 얼버무려준 이유다.
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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