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 이민 단속 공포에 서류미비 노동자 자취 감춰… ‘구인난·인건비 폭등’ 이중고
시 정부-노점상 소송 합의 부메랑… “가게 바로 앞 점령한 노점상에 고객 빼앗겨” 임대료 체납 속출
남가주 외식 산업의 중심지인 LA 한인타운과 웨스트 LA 일대 요식업계가 팬데믹 시기보다 더 가혹한 '빙하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식자재 인플레이션(가격 폭등)과 연방 당국의 이민 단속으로 인한 인력난, 여기에 LA 시 정부의 노점상 규제 무력화 조치(노점상 합법화 쇼크)까지 트리플 악재가 겹치면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로컬 식당들의 폐업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LA 타임스와 요식업 전문 매체 이터 LA(Eater LA) 등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LA 시 일대 레스토랑 업주들은 올해 들어 각종 운영 비용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등하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수준의 운영난을 토로하고 있다.
눈물겨운 운영난 속에서 요식업계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고, 임대료 체납이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팔수록 적자” 식자재 폭등에 얼어붙은 ‘마더스 데이’ 민심
업주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공포는 수치로 드러나는 물가 상승이다.
현지 식자재 도매시장에서 토마토 한 박스 가격은 110달러, 레몬 한 박스는 8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이는 기존 평년 가격 대비 무려 2배에서 3배 가까이 폭등한 수치다.
코로나19 이전 및 최근 정상 주기, 현지 도매시장에서 토마토 1박스(약 25파운드 기준)는 보통 $35달러에서 비싸야 $50달러 선을 유지했다.
레몬 도매가도 남가주에 자체 레몬 산지가 많아 평소엔 보통 1박스에 $25달러에서 $35달러 선이면 충분히 안정적으로 공수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채소와 과일, 육류 가격이 동반 폭등하면서 일부 인기 메뉴의 경우 들어가는 재료 원가가 판매가를 웃도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메뉴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끊기고, 그대로 두자니 팔수록 손해를 보는 진퇴양난의 구조다.
실제로 자영업계 최대 대목 중 하나인 지난 10일 ‘마더스 데이(Mother’s Day)’ 특수도 올해는 완전히 실종됐다.
업주들은 예년과 달리 가족 단위 예약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식당을 찾은 손님들조차 가장 저렴한 단품 메뉴만 주문하거나 음료를 생략하는 등 지갑을 철저히 닫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ICE 기습 작전의 불똥… 식당가 뒤흔드는 ‘블랙홀 인력난’
설상가상으로 최근 LA 일대를 타깃으로 전개되고 있는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고강도 급습 작전은 요식업계의 인력 공급망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LA 지역 식당 주방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서류 미비(Undocumented) 신분의 노동자들이 단속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거 잠적하거나 출근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단속 공포로 인해 요식업 취업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업주들은 기존보다 훨씬 높은 웃돈(급여)을 제시해야만 간신히 직원을 구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고물가로 매출은 줄어드는데 인건비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는 잔인한 이중고가 업주들의 목을 죄고 있다.
합법화된 노점상에 안마당 내준 식당들… “세금 내는 우리만 바보인가”
최근 급증한 길거리 노점상(Street Vendors)의 도심 점령은 기존 자영업자들의 명줄을 끊는 결정타가 됐다.
캘리포니아주가 지난 2019년 노점상 합법화 법안(SB 946)을 시행한 이후 규제가 점차 완화되더니, 2024년에는 LA 시내 주요 거점의 노점 영업 금지 구역이 완전히 폐지됐다.
이는 LA 시 정부가 다저스 스타디움, 크립토닷컴 아레나, 할리우드 보울 등 7대 핵심 구역을 노점 금지 지역으로 묶은 것에 반발해 노점상 연합이 제기한 집단 소송에서 시 정부가 완패하며 합의해 준 결과다.
법적 빗장이 완전히 풀리자 노점상들은 정식 매장 바로 앞 인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영업을 시작했다.
비싼 렌트비와 영업 허가세, 보건국 위생 검사 비용을 꼬박꼬박 내는 정식 업주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가게 앞에서 손님을 가로채는 노점상들을 보며 극심한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한인타운 업주는 "가게 앞이 노점상 연기로 뒤덮이고 손님 발길이 끊겨 이번 달 임대료도 내지 못했다"며 "지자체가 불법은 눈감아주고 합법 자영업자만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식당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노점상 전면 합법화 소송 합의'는 지금 LA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노점상들을 위한다는 정부 정책과 사법부 합의가 자영업자들의 목을 조르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 지원 단체들은 물가와 인력난이라는 거시적 악재에 시 정부의 실책성 규제 완화가 더해진 만큼, LA 시 차원의 긴급 임대료 보조나 자영업자 구제 조치가 즉각 마련되지 않으면 올여름을 기점으로 기념비적인 '골목 상권 붕괴'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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