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 한복판에서 미국 전역에서 온 수 천 명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레디디케이트 250(Rededicate 250) 행사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에서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라는 내용의 성경의 역대하 구절을 낭독했다.
이 구절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건국됐다고 믿는 이들이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영상 메시지에서 미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이 독립전쟁 중이던 1777년 겨울 야영지 밸리 포지에서 무릎 꿇고 홀로 기도했다는 일화를 곁들이며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직접 혹은 영상으로 축사를 하는 인사의 명단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포함되었다.
폭스뉴스, 더 데일리 와이어The Daily Wire, 더 페더럴리스트The Federalist 등 보수 매체와 NYT, WP, CNN, MS NBC 등 진보 매체들은 미국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이 집회를 두고 "건국 정신의 위대한 회복인가, 헌법을 파괴하는 기독교 파시즘의 서막인가"라며 그야말로 피 튀기는 펜 끝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진보 진영 언론 "정교분리 파괴와 기독교 민족주의의 폭주"
진보 매체들은 이번 행사를 '순수한 기도회'가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극우 복음주의 세력이 결탁해 미국 헌법의 근간인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를 무력화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쿠데타로 규정하고 포화를 퍼붓고 있다.
NYT "백악관 공식 지원 하의 기독교 국가 선포"
NYT는 이번 행사가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는 '프리덤 250' 주최로 열렸고, 대통령·국무·국방장관이 총출동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NYT는 이를 "미국이 다원주의 국가가 아닌 '기독교 백인만의 국가'였다는 왜곡된 역사 수정을 공식화하려는 시도"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CNN "위헌적 발상, 소수자에 대한 위협"
CNN은 법학자들의 인터뷰를 대거 인용하며 헌법 제1수정조항(국교 수립 금지 원칙) 위반 소지를 집중 조명했다.
CNN은 "트럼프 정권이 공권력을 동원해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고 있다"며, 이는 미국 내 무슬림, 유대인, 무종교인 등 다원주의 시민 사회를 배제하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경고했다.
진보 진영의 핵심 프레임: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
진보 진영의 논리는 명확하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다양한 이들이 세운 나라이며, 건국 아버님들(제퍼슨, 매디슨 등)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걸 알았기에 헌법으로 벽을 쳤다. 지금 트럼프 정권은 표를 얻기 위해 그 벽을 허물고 있다."
보수 진영 언론 "역사적 팩트의 회복과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한 반격"
반면 보수 매체들은 진보 언론의 비판을 "미국의 진짜 역사와 전통을 지우려는 좌파들의 발작적 선동(Left-wing Hysteria)"으로 규정하며 정면 반박하고 있다.
폭스뉴스 "건국 250주년, 미국의 위대한 뿌리를 기억하다"
폭스뉴스는 조지 워싱턴의 밸리 포지 기도 일화나 1775년 대륙회의의 금식기도 선언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을 전면에 배치했다.
또한 미국의 건국과 헌법 시스템 자체가 기독교적 가치관(인간의 존엄성, 천부인권) 위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 페더럴리스트 "존 애덤스를 읽어라, 정교분리는 종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더 페더럴리스트는 진보 진영이 말하는 정교분리는 '정부가 교회를 통제하지 못하게 막는 벽'이지, '정치적 공간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완전히 청소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존 애덤스의 "우리 헌법은 오직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는 문구를 인용하며, "오히려 종교적 가치가 사라진 미국은 범죄와 도덕적 파산으로 무너질 것"이라 주장했다.
보수 진영의 핵심 프레임: 전통 가치의 회복(Restoration of Heritage)
보수 진영의 역공 노선은 이렇다.
"좌파들이 주도하는 PC 주의와 역사 수정주의(1619 프로젝트 등)가 미국을 '노예제와 억압의 나라'로 오염시켰다. 독립 250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을 복 주신 하나님 앞에 다시 겸손히 무릎 꿇는 건국 초기의 정신으로 리셋하는 것이다."
핵심 쟁점: '정교분리'의 진짜 해설서
이번 보도 전쟁의 본질은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싸움이다.
정교분리(제1수정조항) 해석의 대충돌에서, 진보(분리주의, Separationism)는 정부와 공적 영역에서 종교(기독교)를 완벽히 격리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진보 노선의 앤드루 코플먼 교수(노스웨스턴대 로스쿨)는 "특정 종교가 행정부 권력과 결탁하면 종교도 타락하고 정부도 오염된다"며 "내셔널 몰이라는 국가 공공부지에서 행정부 수뇌부들이 기독교 예배를 드리는 것은 명백한 선 넘기"라고 비판했다.
보수(수용주의, Accommodatisms)는 특정 국교 수립만 안 하면 되지, 전통과 공적 신앙 표현은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 노선의 마이클 모어랜드 교수(빌라노바대 로스쿨)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미국의 달러 지폐에도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가 적혀 있고, 의회 시작 전에도 목사가 기도한다"며 "공적 영역과 신앙의 교차는 미국의 유구한 전통인데, 이것까지 위헌이라고 시비 거는 것은 좌파들의 기독교 혐오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논쟁은 1787년 미국 헌법이 제정된 이래 24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결론이 나지 않은 ‘미국 정치학의 영원한 평행선’이다.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맞고 틀리다기보다는, 두 진영 모두 미국 건국의 역사적 유산 중에서 ‘서로 다른 팩트’를 취사선택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이유 "역사적 실재와 시스템의 작동 조건"
보수 진영의 "미국의 뿌리는 기독교이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에 강력한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남긴 일기, 연설문, 초기 주 헌법들을 보면 기독교적 신앙 고백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들은 영국 왕정의 압제에 맞설 논리적 무기로 "모든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았다(천부인권)"는 성경적 개념을 가져와 독립선언서를 썼다.
JD 밴스가 이날 행사에서 인용한 존 애덤스의 말처럼, 미국의 민주주의와 권리장전은 "시민들이 신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덕적 자제력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설계된 구형 OS다. 보수파의 말대로 이 종교적·도덕적 토대를 인위적으로 완전히 지워버리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지탱할 정신적 구심점이 사라져 모럴 해저드와 공동체 붕괴가 올 수 있다는 진단은 매우 현실적이다.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이유 "다원주의 리스크 관리와 권력의 오용 경계"
반면 진보 진영의 "정교분리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며, 행정부가 특정 종교 행사를 주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은 미래지향적인 시스템 관리와 독재 방지 측면에서 탁월한 정당성을 가진다.
국가 내 종교 문제는 자칫 종교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다. 건국 아버지들이 헌법 제1수정조항에 '국교 수립 금지'를 박아 넣은 이유는 유럽이 종교(기독교 파벌, 특히 구교와 신교) 때문에 수백 년 동안 피를 흘리며 싸운 역사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 권력이 특정 종교의 교리와 결탁하는 순간, 정치는 독단적으로 변하고 반대파는 '악마'가 되어 타협이 불가능해진다.
현실적인 리스크도 있다. 현재 미국은 백인 기독교인만의 나라가 아니다. 히스패닉, 아시아계, 무슬림, 무종교인 등 엄청난 다원주의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수뇌부들이 내셔널 몰에서 대규모 기독교 예배를 드리고 이를 국가 공식 서사로 밀어붙이는 것은, 나머지 시민들에게 "너희는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라는 소외감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종교를 무기로 삼은 정치 권력의 비대화는 반드시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진보 매체들은 레디디케이트250에 대해 '이념과 헌법(정교분리)'의 프레임으로 가두어 공격하고 있고, 보수 매체와 트럼프 정권은 '실용과 서사(미국의 역사적 정체성 회복, 청년층의 결집)'의 프레임으로 돌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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