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통근 철도망인 롱아일랜드 철도(LIRR)가 수년간의 임금 협상 결렬로 결국 전면 파업 사흘째를 맞이했다.
파업 이후 첫 평일이었던 18일 월요일 아침, 롱아일랜드와 맨해튼을 오가는 출퇴근길은 극심한 혼란과 정체로 뒤덮였다.
뉴욕 서브웨이와 주요 간선도로는 우회하려는 차량과 인파가 몰리며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모했다.
평일 기준 하루 평균 25만에서 30만 명의 유동인구를 처리하는 LIRR 라인이 멈춰 선 것은 지난 1994년 이후 무려 32년 만에 처음이다.
맨해튼의 심장부인 펜스테이션(Penn Station)을 마비시킨 이번 ‘LIRR 대파업’은 단순한 교통 체증 뉴스가 아니다.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뉴욕 포스트 등은 이를 "팬데믹 이후 정착된 재택근무(Remote Work) 시스템의 복원력 테스트"이자, "뉴욕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폭발"로 분석하고 있다.
덮쳐온 펜스테이션의 침묵, ‘출근 잔혹사’에 갇힌 시민들
평소라면 맨해튼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 없었을 펜스테이션과 그랜드 센트럴 매디슨 터미널의 LIRR 플랫폼은 적막만 감돌았다. 대신 그 여파는 뉴욕의 도로망과 지하철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맨해튼의 초등교사인 케이티 돌고우 씨는 롱아일랜드에서 퀸스 경계에 진입하는 데만 평소의 배가 넘는 1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그녀는 "오후에 어린이집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가려면 점심 직후에는 퇴근길에 올라야 할 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출퇴근길이 사실상 마비가 된 것이다.
존 제이 형사사법대(John Jay College)의 한 재학생은 "하필 기말고사 기간에 파업이 터져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하는데 우회 경로가 너무 복잡해 시험을 놓칠까 두렵다"며 NYT에 불안감을 호소했다.
퀸스에서 롱아일랜드 방향의 요양원으로 역방향 출근하는 맨디 램잔 씨 역시 출근 시간이 1시간 이상 늘어났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이해하지만, 당장 생업에 타격을 받는 시민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화이트칼라의 '재택 피신'과 셔틀버스의 실패
운영 주체인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롱아일랜드 주요 거점 6개 지역에서 퀸스 지하철역을 잇는 대규모 무료 셔틀버스 노선을 긴급 투입했다.
당국은 최소 1만 3,000명 이상이 이 셔틀버스를 이용할 것으로 추산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2,000여 명에 그치며 방역 및 수송 대책은 비효율의 극치를 달렸다.
이유인즉슨, 맨해튼의 수많은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 대신 즉각 '재택근무(Remote Work)'로 전환해 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현장 출근이 불가피해 자차를 몰고 나온 블루칼라 및 필수 의료 인력들이 일제히 도로로 쏟아져 나오면서 주요 고속도로는 유례없는 주차장 신세가 되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되는 맨해튼의 금융·IT 화이트칼라들은 재택근무로 도망쳐 평온한 아침을 보내고 있지만, 요양원 직원(맨디 램잔), 초등교사(케이티 돌고우)처럼 몸이 직접 현장으로 가야 하는 필수 노동자들은 도로 위에서 삶을 갉아먹히는 불편과 피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전형적인 행정의 탁상공론 때문이다. MTA가 급히 편성한 무료 셔틀버스의 동선은 맨해튼 중심가로만 편성되어 있다. '맨해튼 사무실로 출근하는 화이트칼라'의 동선에 맞춘 대책인 것이다.
하지만 퀸스에서 롱아일랜드 방향의 ‘요양원’(맨디 램잔 씨 사례)이나, 뉴욕 외곽의 제조 공장, 물류 창고, 대형 병원들은 맨해튼 한복판이 아니라 오히려 뉴욕 교외나 롱아일랜드 전역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또한 셔틀버스는 철저히 통상적인 화이트칼라의 출퇴근 시간(9-to-5)을 기준으로 작동, 3교대(8시간씩) 또는 2교대(12시간씩)로 24시간 상시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 요양원 직원, 야간 보안요원, 공장 기술자들이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힘들다.
여기에 직업의 특성상 몸만 이동하면 되는 화이트칼라와 달리,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개인 작업 도구, 안전 장비, 혹은 무거운 유니폼 등을 차량에 싣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과 셔틀버스만을 이용해 출근하기에 물리적인 제약이 큰 것도 문제다.
살인적 물가 vs 요금 인상 압박… 임금 협상의 한계점
LIRR 노조가 32년 만의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둔 핵심 배경에는 뉴욕의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전국적인 물가 상승, 특히 뉴욕의 살인적인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직원들이 극심한 생계 압박을 받고 있다"며 "우리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과 의료보험료 분담률 조정은 사치가 아닌 '최소한의 생존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자금난에 시달려온 MTA 측은 배수의 진을 쳤다.
MTA 데스크는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이는 고스란히 뉴욕 시민들의 통근 요금(Fare) 폭등과 대규모 재정 적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양측은 월요일 오후 늦게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막판 조율에 돌입할 예정이지만, 이견이 워낙 완강해 파업 장기화에 대한 뉴욕 시민들의 공포는 깊어지고 있다.
생계를 위해 돈을 더 달라는 노조와 자금난을 호소하고 시민들의 요금을 올릴 수 없다고 하는 사측의 평행선은, 화려한 뉴욕이라는 복잡계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 배후에서 얼마나 아슬아슬한 비용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1994년 이후 32년 만에 터진 이 파업은 결국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가속화된 고물가 압박이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생계선부터 무너뜨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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