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개전 2개월째를 넘어서며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마비와 해상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라, 미국 가계가 정유 및 연료비 급등으로 인해 사상 유례없는 재정적 압박 직격탄을 맞고 있다.
16일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에너지 가격 정보 전문업체인 OPIS(Oil Price Information Service)의 유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미국인들이 개솔린과 디젤 구입에 추가로 지출한 누적 연료 비용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50억 달러(약 61조 원) 가량 급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갤런당 3달러 미만에서 4.55달러로… 50% 폭등한 전국 유가
이란 행정부의 에너지 요충지 호르무즈 해협 통제 선언과 이에 맞선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 조치는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 장중 배럴당 112달러 돌파)를 뒤흔들며 즉각 미국 내 소매 주유소 가격으로 전가되었다.
개전 직전까지 미국 전국 평균 갤런당 3달러 선을 밑돌던 레귤러 개솔린 가격은 전쟁 이후 50% 이상 급등하며 현재 갤런당 평균 4.55달러를 넘어섰다.
자동차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캘리포니아주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전미자동차협회(AAA)의 17일 기준 공인 통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레귤러 개솔린 평균 가격은 갤런당 6.14달러를 기록해 한 달 전(5.86달러)보다 28센트 추가 상승했다.
특히 남가주(LA 및 오렌지카운티) 일부 주유소의 실물 가격은 7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란발 쇼크 외에도 캘리포니아 특유의 엄격한 환경 규세, 정유시설 부족, 여름철 블렌드 연료 전환 비용이 겹친 결과다.
직장인의 한 달 평균 개솔린 비용이 300달러 선에서 현재는 500달러로 두 배 정도 증가했고, 저축이나 외식비 등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류 트럭의 필수 연료인 디젤 가격은 캘리포니아 기준 갤런당 7.43달러까지 치솟으며 미국 내 공급망 전체의 운송 단가 인상을 압박, 물류업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금융권의 연간 경고: 가계 지출 추가 부담 1,720억 달러 추산
미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JPMorgan Chase)은 자사 리서치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고유가 기조가 올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미국 가계가 지난해와 비교해 총 1,720억 달러(약 234조 원)를 연료비로만 더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같은 연료비 폭등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즉각 잠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인들이 급등한 주유비를 대기 위해 저축을 줄이는 것은 물론 외식, 여가 생활, 가족 여행 등을 최우선으로 취소하며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갤럽·연준의 데이터: 고통은 저소득층에 집중, 글로벌 에너지의 역설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1%가 생활비 상승을 가계의 가장 큰 재정적 위기로 꼽았으며, 이 중 '에너지 비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응답자는 13%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폭증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이후 최고치다.
불평등한 인플레이션 압박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연구소의 카드 지출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중산층 및 고소득층의 항공·숙박 관련 지출은 전년 대비 방어선을 유지하거나 소폭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 가구의 여가 관련 지출은 급감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New York Fed) 데이터 역시 연 소득 12만 5,000달러 미만 가구의 평균 주유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주며, 고유가의 생계 압박이 서민층에 집중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주유비 절약 앱(가스버디, 업사이드 등)의 다운로드 수가 한 달 새 수백 퍼센트 폭증하고, 카풀 앱 사용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코스트코 주유소로 차량이 종일 장사진을 이루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석탄의 역설적 부활
한편, 글로벌 석유·가스 가격 변동성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자 전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기조를 일시 퇴행시키고 '석탄 발전'으로 회귀하는 나비효과도 포착되었다.
WSJ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대만이 최근 가동 중단했던 석탄 화력발전소를 전격 재가동했으며, 한국 또한 지난달 석탄 발전량을 평시 대비 3분의 1 이상 확대하며 화석 연료 의존도를 다시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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