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친환경 야망이 개솔린 가격이 갤런당 6달러를 위협하는 캘리포니아(CA)주의 실물 경제 위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온실가스 감축의 글로벌 선두 주자를 자처하던 캘리포니아주가 치솟는 개솔린 가격과 주내 정유소들의 잇따른 폐쇄 리스크에 직면하자, 거대 석유 기업들을 포함한 핵심 오염 물질 배출 기업들에게 무려 40억 달러(한화 약 5조 3천억 원) 규모의 탄소 배출권을 공짜로 쥐여주는 방안을 최종 검토 중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개솔린 공급망 붕괴(정유소 폐쇄 리스크)를 막으려는 주정부의 고육지책과 "대형 석유 자본(Big Oil)에 대한 특혜"라며 폭발한 환경 단체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거센 정치적 뇌관이 터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친환경 대부'를 자처하던 개빈 뉴섬 주지사와 CA 주정부가 갤런당 6달러라는 잔혹한 인플레이션과 표심 앞에 탄소 규제의 빗장을 풀어버린 '기후 정책의 민낯'이라는 지적이다.
뉴섬 주지사는 환경을 지키자니 표가 날아가고, 기름값을 잡자니 대기업 특혜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정책 전문 매체 칼매터스(CalMatters)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오는 5월 28일 "캘리포니아주가 대기오염 기업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공짜 탄소 면죄부(무상 배출권)'의 양을 대폭 늘려줄 지에 대해" 최종 결정하는 정책 승인 표결을 앞두고 정유소, 시멘트 공장 등의 탄소 배출권 무상 할당량을 대폭 늘리는 ‘캡 앤 인베스트(Cap-and-Invest)’ 프로그램 수정안을 전격 공개했다.
수정안에는 정유소, 시멘트 공장, 식품 가공 공장 등이 탄소를 배출할 때 돈을 주고 사야 했던 배출권의 상당수를 최대 40억 달러어치까지 '무상(Free)'으로 지급하는 규제 완화 내용이 담겼다.
원래 CARB는 2045년 탄소 중립을 위해 배출권 규제를 더 조이고 시장에서 배출권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정유소들이 "비용 감당이 안 된다"며 공장을 문 닫고 기름값이 폭등하자,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유사들 숨통을 틔워주는 '모순된 당근책'을 표결에 부친 것이다.
이에 환경 단체들은 "주정부가 기후 백스톱(안전망)을 스스로 무력화하고 대형 석유 자본에 보조금을 퍼주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갤런당 6달러의 공포 vs 기후 목표
개빈 뉴섬 주정부가 자본주의 탄소 시장의 룰을 뒤흔들며 매연 배출 기업들에게 ‘공짜 티켓’을 발부하려는 배후에는 철저한 정치·경제적 손익 계산이 깔려 있다.
최근 CA 주내 정유소 두 곳이 친환경 전환 및 비용 압박을 이유로 운영 중단 및 바이오 연료 공장 전환을 선언하면서 에너지 공급망이 급격히 위축됐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이 겹쳐 기름값이 폭등하자, 주정부는 정유소의 추가 폐쇄 및 셧다운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당근책을 꺼내 들었다.
라진더 사호타(Rajinder Sahota) CARB 부국장은 "소비자 수요가 존재하는 한 CA 주민들에게 안정적이고 저렴한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면서 "이번 무상 배출권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및 효율성 개선 프로젝트에 투자를 약속(Commitment)하는 기업에게만 한시적·제한적으로 제공되며, 남용 시 즉각 회수(Rescinded)할 것"이라고 사법적 방어벽을 쳤다.
"청정에너지 투자? 석유 재벌에 너무 관대하다"
그러나 학계와 환경 운동 진영의 데이터 검증 결과는 주정부의 발표와 크게 대치된다.
CARB의 탄소 시장 감독 독립위원회 의장인 메러디스 파울리(Meredith Fowlie) UC 버클리 에너지 경제학자는 정밀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번 수정안의 디자인은 자격을 갖춘 정유소들에게 실제 배출량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의 과도한 공짜 배출권을 주게 된다"며 주정부의 정책이 "매우 관대하다(Generous)"고 직격탄을 날렸다.
UC 산타바바라(UCSB) 연구팀의 경제 연산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보조금 프로그램이 통과될 경우 탄소 시장 수익금이 줄어들어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전기세 고지서를 통해 일 년에 두 번씩 돌려받던 ‘캘리포니아 기후 크레딧(Climate Credit)’ 환급액이 총 17억 달러가량 축소되어 결국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기업을 밀어주는 꼴이 된다는 팩트가 입증됐다.
LAO 재정 경보: 주정부 기후 기금 반토막 리스크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살림살이를 감시하는 입법분석실(LAO)은 19일 긴급 브리핑 핸드아웃을 통해, 대기업들에게 40억 불의 배출권을 공짜로 주면 주정부가 매년 경매(Auction)를 통해 벌어들이던 탄소 기금 수익이 반토막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탄소 경매 수익이 급감할 경우, 현재 CA주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캘리포니아 고속철도(Bullet Train) 국책 사업’에 매년 투입되던 10억 달러의 고정 자금줄마저 위태로워져 주정부의 핵심 인프라 예산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5월 28일 CARB의 운명의 표결 결과가 나오게 된다.
수정안이 통과되면, 정유사들의 탄소 비용 부담이 수십억 달러 감소, 정유소 추가 폐쇄를 막고 갤런당 6달러를 돌파하려는 개솔린 소매 가격의 폭등세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유사들에 공짜로 배출권을 주는 만큼 주정부가 경매로 벌어들이던 수입이 반토막 난다. 이 때문에 CA 주민들이 전기세 고지서로 환급받던 ‘기후 크레딧’ 총 17억 달러가 공중분해되어, 결과적으로 서민 돈으로 석유 재벌을 밀어줬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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