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5월, LA 북부 샌퍼난도 밸리 카노가 파크의 초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 토팽가(Westfield Topanga)’에는 미국 외식 및 유통업계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오프라인 유통 불황으로 문을 닫은 옛 시어스(Sears) 백화점 자리를 리모델링해, 축구장 크기의 혁신적 미식 공간인 ‘토팽가 소셜(Topanga Social)’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평범한 쇼핑몰 푸드코트가 아니었다.
팻살스(Fat Sal’s), 미니 케밥(Mini Kabob) 등 남가주(Southern California)에서 가장 핫한 로컬 맛집 27개 브랜드를 한곳에 모았다.
특히 매장 곳곳에 배치된 대형 터치스크린(키오스크)을 통해 독자들은 27개 식당의 메뉴를 장바구니에 한 번에 담아 결제하는 테크 기반의 인프라를 구축해 "외식업의 미래 플랫폼"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초기 엄청난 인파를 끌어모았다.
백화점의 죽은 자리에 핫한 로컬 맛집들을 모두 영끌하여 미래형 외식 플랫폼을 심은 것이다.
맛과 서비스를 포기한 ‘핸즈오프(Hands-off)’의 덫에 빠진 푸드홀
그러나 외형적 화려함은 정확히 3년 만에 참혹한 파국을 맞이했다. 전문가들은 토팽가 소셜을 파멸로 이끈 핵심 원인으로 ‘라이선스 위탁 운영(Licensing Agreement)’이라는 기형적 계약 방식을 꼽는다.
이곳에 입점한 유명 맛집들은 공간을 직접 임대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브랜드 상표권과 레시피만 제공하고, 실제 현장 직원 채용, 식자재 조달, 매장 관리 등 매일매일의 실무 운영은 푸드홀 총괄 관리 회사가 전담하는 이른바 ‘핸즈오프(주인 없는 매장)’ 구조였다.
주로 공항 터미널이나 놀이공원에서나 쓰던 방식이었기에, 명품 푸드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 방식은 외식업의 본질을 깨뜨리는 독약이 되었고, 지금과 같은 폭망의 예고탄이 되고 말았다.
식당 본사(장인)들이 매장을 직접 통제하고 주방을 감시하지 못하자, 이름은 유명 맛집인데 막상 푸드홀에서 먹어보면 본점의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가장 중요한 음식맛이 들쭉날쭉해진 것이다.
테크를 과신한 전면 키오스크 주문 시스템은 손님과 매장 간의 소통을 단절시켜 친절한 접객 서비스를 증발시켰고, 내부 소음 문제까지 겹치며 소셜미디어(SNS)에는 악평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소통 없는 기계적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불만을 산 것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하드웨어 설계 오류로 인한 부실한 인프라와 외부적 악재까지 겹쳤다.
초대형 푸드홀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 전용 주차 공간은 고작 65대 수준에 불과했다. 손님들은 밥을 먹는 시간보다 주차 공간을 찾아 몰 주위를 뺑뺑 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질려버렸다.
추가로 오픈 첫해인 2023년 LA 경제를 마비시켰던 ‘헐리우드 작가·배우 노조의 동반 대규모 파업’이 터지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고, 초기 오픈 유효 효과를 지속적인 매출로 연결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시너지 효과를 내야 했던 인근 대형 복합 볼링장 '핀스트라이프스(Pinstripes)'마저 실적 부진으로 지난해(2025년) 9월 백기를 들고 문을 닫으면서 푸드홀은 고립무원에 빠졌다.
131명 무더기 해고와 대형 체인으로의 ‘비참한 회군
현재 토팽가 소셜은 사실상 숨통이 끊어진 ‘유령 푸드홀’로 전락했다.
올해 초 총괄 관리 회사는 연방정부에 직원 131명을 한 방에 잘라버리는 무더기 감원 통지서(WARN notice)를 제출했고, 계약이 끝난 간판 맛집들은 유령 도시가 된 이곳을 앞다투어 탈출했다.
쇼핑몰 매니지먼트사인 웨스트필드 측은 이 공간을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대수술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비참한 ‘U턴 전략’이다.
실험적이고 힙한 로컬 맛집들과의 플랫폼 실험을 전면 폐기하고, 직접 임대 방식을 통해 대형 글로벌 체인점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이미 유명 라면 체인 ‘진야 라멘바’가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조만간 글로벌 회전초밥 체인 ‘쿠라 스시(Kura Sushi)’가 문을 열며, 내년(2027년)에는 세계적인 덤플링 명가 ‘딘타이펑(Din Tai Fung)’의 입점이 확정되었다.
유통 공룡 웨스트필드마저 오만을 꺾고 '쿠라 스시'와 '딘타이펑' 같은 검증된 대형 시스템 자본(체인점)을 모셔 와 인공호흡기를 달기로 결론을 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외식 비즈니스를 하는 기획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의 힘'을 보여준다.
아무리 화려한 몰에 입점하고, 터치스크린 몇 번으로 27개 식당 음식을 주문하는 최첨단 테크 플랫폼을 깔아놓아도, "주차가 불편하고, 주인이 없어 음식 맛이 본점만 못하며, 서비스가 개판"이라면 자본주의 시장의 소비자들은 3년 안에 그 공간을 철저하게 사형 처해 유령 도시로 만들어버린다는 잔인한 경고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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