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역에서 ‘정부 기관 사칭 범죄(Government Impersonation Scam)’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남가주의 한 은퇴 부부가 연방 우정국(USPS)와 연방 수사국(FBI)를 사칭한 사기범들에 자신들이 모은 전 재산을 사기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5개월간의 '심리적 감옥'
ABC7 LA,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The Orange County Register) 등 언론들은 이 사건을 단순히 돈을 뺏긴 사건이 아니라, 범인들이 부부를 심리적으로 장악한 '범죄적 조종(Criminal Manipulation)' 사례로 보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25년 2월, 사기범들은 발신 번호를 조작(Spoofing)해 USPS 직원을 사칭했다.
그들은 피터와 다이앤 하타 부부 명의로 불법 총기가 배송돼 현재 FBI가 수사 중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 부부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부부가 결백을 증명하려 하자 범인들은 화상 통화를 통해 FBI 배지와 재킷을 착용한 '가짜 요원'을 등장시켜 부부의 의심을 완전히 없앴다.
이들은 위조된 FBI 서류를 보여주며, 이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돈을 암호화폐로 전환해 전달하면 범죄 혐의가 없음을 증명해주겠다는 논리로 부부를 옥죄었다.
겁에 질린 부부는 이후 몇 달 동안 수만 달러씩 암호화폐로 송금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37년간 지켜온 집까지 담보로 해서 대출(Equity Loan)을 받았고, 결국 자신들이 평생 모은 전 재산 84만 5,000달러를 범죄자들의 암호화폐 지갑으로 전송하고 말았다. 이런 과정은 무려 15개월이나 지속되었다.
84만 달러라는 숫자는 단순히 돈의 액수를 넘어, 부부가 평생을 바쳐 쌓아온 '노후의 안전과 생명'이었다.
모든 자산이 바닥나고 나서야 그들은 실제 FBI에 전화를 걸었고, 해당 이름을 가진 요원은 없으며,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수사 자체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부인인 다이앤 하타 씨가 극심한 불안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 지인들은 이들을 돕기 위해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를 통해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를 낚는 '시나리오'의 내용
사기범들은 "당신 명의로 불법 총기가 배송되었고, 이 사건에 당신이 연루되었다"는 공포스러운 허위 사실을 던진다. 이는 평범한 은퇴 부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충격을 준다.
피해자가 겁을 먹고 당황하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거나 "당신의 돈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니 우리가 지정한 '안전한 계좌(혹은 암호화폐 지갑)'로 돈을 옮기라"는 식으로 송금을 유도한다.
이때 범죄자들은 '스푸핑(Spoofing)' 기술을 사용하는데, 범인을 믿게 만드는 '기술적 장치'다.
스푸핑은 피해자가 범인을 '진짜 FBI 요원'이라고 믿게 만든 '발신 번호 조작 기술'이다. 범인이 전화를 걸 때, 자신의 실제 번호를 숨기고 FBI 공식 전화번호나 연방 정부의 전화번호가 피해자의 휴대폰 화면에 뜨도록 번호를 바꿔치기한다.
번호만 바꿔치기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화면에 뜬 번호를 검색해 본다. 하지만 피해자가 FBI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번호를 검색해 보더라도, 사기범이 조작한 번호가 그 번호와 일치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아, 정말 FBI구나!"라고 100%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전화를 받는 전화가 아니라 다른 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
왜 이런 사기가 계속되는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2025년 사이버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기관을 사칭한 사기 피해는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발신 번호 조작 기술을 사용하는 기술적 정교함으로 실제 기관의 전화번호가 뜨게 만들고, 가짜 FBI 배지와 FBI 문서를 통해 피해자를 완전히 속이기 때문이다. 다른 정부 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체포될 수 있다"는 협박과 함께 "사건을 비밀로 유지하라"고 요구하여 피해자가 공포심으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차단한다.
전문가가 전하는 '절대 수칙'
미 수사 당국과 보안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전화를 통해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FBI, CIA, 국세청(IRS) 등 어떤 수사기관도 암호화폐나 기프트카드, 현금 송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송금 요구 시 즉시 연락을 끊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면 상대가 알려준 번호가 아닌, 해당 기관의 공식 웹사이트에 게시된 공식 번호를 확인하고 그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전화를 받은 전화가 아니라 다른 전화로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사기범들이 '비밀을 유지하라'고 협박할수록, 반드시 주변 가족이나 경찰에 알리는 것이 사기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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