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신청자에게 부과했던 ‘10만 달러 수수료’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은 8일 해당 수수료가 의회의 승인 없이 부과된 ‘불법적인 세금’이라며 이를 전면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20개 민주당 주 법무장관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나온 결과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

리오 소로킨(Leo Sorokin) 연방판사는 42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부과한 10만 달러의 비용은 행정적 수수료가 아닌 ‘세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규정했다.

판사는 “대통령은 의회의 법률적 위임 없이 독자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며, 이번 정책은 미국 헌법상 의회만이 가진 조세권(taxing power)을 침해한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번 수수료 인상이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의료·교육·연구 분야 등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이루어진 ‘독단적이고 자의적인(arbitrary and capricious)’ 조치라고 지적했다. 행정절차법(APA)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수수료 인상 후폭풍… 비자 신청 ‘급감’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도입된 10만 달러의 수수료는 기존(약 2,000~5,000달러 수준) 대비 20~50배 이상 폭등한 금액이었다.

IT 기업을 포함한 실리콘밸리 기업, 대학, 병원 등 전문 인력이 필수적인 기관들은 이번 조치로 인해 운영에 막대한 차질을 겪어 왔다.

정부 제출 자료에 따르면, 수수료 인상 이후 실질적인 신청 수요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올해 2월 중순까지 이민국(USCIS)에 접수된 신청 건수는 단 85건에 불과해, 사실상 H-1B 비자 프로그램이 마비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트럼프 행정부 "사법 행동주의" 비판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을 ‘노골적인 사법 행동주의’라고 비판하며, 즉각적인 항소를 통해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번 판결이 전국적인 효력을 갖는 ‘약식 판결(summary judgment)’로 내려진 만큼, 상급 법원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부가 해당 수수료를 강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미국 상공회의소 등이 제기한 별도의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H-1B 비자 정책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