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의회가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경순찰대에 대한 700억 달러(약 106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처리했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 종료 시점까지 적용되는 3년 치 규모의 대규모 예산이 야당인 민주당의 전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통과되면서, 미국의 이민 정책을 둘러싼 정국은 한층 더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공화당과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이 예산을 무기로 이민 정책을 저지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려는 시도를 원천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매년 혹은 매 회기마다 반복될 수 있는 예산 전쟁을 생략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과제인 '대규모 추방' 및 '국경 단속'을 임기 끝까지 안정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재정적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계속되어 온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기조가 임기 끝까지 변함 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민자 공포 시대가 트럼프 임기 내내 계속된다는 의미다.

‘아슬아슬한 통과’… 예산 전쟁의 종착지

9일 연방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예산안 표결은 찬성 214표, 반대 212표로 단 2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 신속 처리 절차를 동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은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 내내 예산을 인질로 잡는 일을 원천 차단했다"며 자축했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이 "시민들을 잔혹하게 대하고 표적으로 삼는 추방 기구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지난 1월 발생한 이민 단속 요원의 총격 사건 이후 요구해온 개혁안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 요구 수용 안 해

민주당은 그동안 ▲단속 요원 마스크 착용 금지 ▲수색영장 취득 의무화 등의 개혁안이 전제되지 않는 한 예산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결국 백악관과 공화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초당적 합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백악관 연회장 보안 예산 등 당내 이견으로 일정이 지연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초당적 협력의 종말?

미 주요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의회의 기능 마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이 정상적인 초당적 예산 편성 절차를 포기했다"며, 앞으로 정부 기관 예산안 처리가 합의보다는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번 예산 확보로 트럼프 행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이민 단속 강도를 훨씬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내내 안정적으로 이민 단속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안전장치'를 완비한 것이다.

반면 의회 내 갈등은 극에 달해, 향후 다른 입법 과정에서도 여야 간의 타협점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민자 보호 단체 "공포의 시대가 열렸다"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들은 이번 예산이 단순한 행정 비용이 아니라, 사실상 '대규모 추방 작전'을 위한 전쟁 자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권자와 이민자가 섞여 있는 가족들에게는 생이별의 공포가 현실화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등 주요 인권 단체들은 이번 예산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헌법 위반 사례들을 면밀히 감시하고, 전국 단위의 집단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민자 밀집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3년치나 확보된 넉넉한 예산을 바탕으로 단속 요원들이 무장하고 거리를 배회하거나, 영장 없이 수색을 시도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죽인 일상을 보내야 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국경 지대나 대도시의 이민자 중심 상권에서는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노동 현장에서는 단속을 피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는 등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